이 홈페이지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
1993학년도 완월 5의9반 아이들

1993년 마산 완월초등학교 5학년 9반

1993년 3월 1일 - 1994년 2월28일

 



오래 기억하기





내가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순전히 나를 위해서이다. 함께 지냈던 사람들이 한 해만 지나버려도 기억속에서 가물거린다. 나는 그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오래도록 나의 기억속에 그들을 붙잡아 두고 싶은 것이다.

그들은 나와 함께 ‘우리들’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이 글은 읽어도, 읽지 않아도 아무 상관없는 나의 혼잣소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우리들은


1993년 3월에 만나

마산 완월국민학교 본관 건물 3층

중앙현관 바로 위 교실에서

5학년9반으로 함께 지냈다.


맨 처음 남자 스물다섯, 여자 스무사람이었다가

뒤에 남자 둘, 여자 하나가 새로 와서

학년을 마칠 때에는 모두 48명이었다.

그리고 담임은 정현숙이었다.



1 유정수


학년 처음부터 시끄러웠다. 전현배와 짝꿍이 되어 구시렁거리더니 그 다음에는 광모와 죽이 맞아 그랬다. 무슨 일이든 제가 꼭 끼어야 직성이 풀리고 남 앞에 나서야 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마음씨는 비단결 같아서 별 것 아닌 일에도 눈물을 비추곤 했는데 그것은 그의 평소 때 하는 짓으로 본다면 상당히 의외의 일이기도 했다.


4. 13. 화.  맑음


교실에서 아이들이 하던 공기를 빼앗았다.

내가 걸상에 올라가니 이정민이 나를 밀어 나는 걸상에서 떨어졌다.

바닥에 무릎을 부딪혀 무릎이 몹시 아팠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뒤 무릎을 보니 붉게 멍이 들어 있었다.

그때 나는 화가 났지만 나의 잘못도 있었다. 공기를 빼앗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주 야단을 듣고 또 울기도 했다. 그럴 때의 정수는 언제나 불평이 부글부글 끓었었는데 그것이 입밖에 까지 넘쳐 나올 때가 종종 있었다. 나는 알면서도 일부러 그것을 무시해버렸다.

그러던 정수가 여름방학을 마치고는 많이 달라졌었다. 갑자기 의젓해진 품이 방학동안 어른이 된 듯 하였다. 우리들과 어울릴 때도 제 고집만 부리지 않았다. 내쳐 쏟지는 않았지만 공부할 때의 그의 노력도 얼마간 보였다.

그는 큰 키에 동그랗고 좀 작은 눈을 가졌다. 얼굴은 길쭉하면서도 납작한 편인데 말할 때 보면 그의 입술은 앞으로 툭 내밀어졌었다. 그는 제 고집을 많이 부리는 편이었는데 눈을 부라려 삿대짓을 해 대는 그의 모습은 그러나 정다움도 함께 느끼게 했었다. 그는 나를 가장 성가시게 하던 사람이기도 하지만 드러내 놓고 나를 좋아하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밥먹기 보다 오히려 더 좋아하고 그래서 친구도 많았다. 그렇지만 자기 생각이 뚜렷해서 남에게 이끌려 다니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그는 어디에서건 남들과 더불어 살되 자기 방식의 삶을 제대로 지킬 그런 사람이었다.



2 정정규


처음에 척 보았을 때부터 이 사람은 꼭 무슨 일을 벌일 것 같은 예감을 받았다. 작달막한 키, 날카로운 눈매에다 얇다랗고 큰 입이 주는 인상은 여늬 보통 사람과 다름을 금방 느끼게 했다. 그를 잘 아는 선생님들의 말씀으로도 4학년 때까지의 그의 활약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중간에 제 친구네 집에서 있은 어떤 일을 뺀다면 그러나 그가 한 일들은 대수로운 것이 아니었다. 우리들의 눈으로는.

교과서의 공부는 뒤쪽에서 순위를 다투는데도 우리의 정규는 기죽을 사람이 아니었다. 키가 작은 것도 그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구슬이며 딱지이며 장난감이며 만화책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안 그래서 그렇지 전자오락실에 가는 횟수까지 문제가 되었더라면 그는 아마 더 열심히 갔을 것이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보니 8시였다.

나는 얼른 일어나 7번을 털어 보았다. 만화동산이 화고 있었다. 만화주에서 다람지 구조대가 놀고 있는데 나쁜 박사가 구름을 만들어 비가 오게 화고 눈이 오게 화여 은행을 얼게 해서 돈을 가저 갔다. 나는 다람지 구조되가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비행기를 만들어 나쁜 박사의 구름을 바람으로 날리면 될 걸 하고 생각하는데 고대로 되었다.

참 신기하였다.

나는 일기를 쓰고 잠을 잤다.

만화는 참 재미가 좋았다.


그는 우리들과 함께 지내는 일년동안 두어 번 결석을 했다. 한 번 결석을 했다하면 사나흘씩 묶어서 했는데 그 결석의 원인들이 학교보다는 전자오락실이 더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전자오락실이 그를 공짜로 들여주는 것이 아니니 돈이 문제였다. 그는 그 돈들을 마련하기 위해 아마 무던히 애를 썼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런 곳에 갈 수 있는 일 그 자체가 문제였지만 정규에게서의 문제는 그게 아니라 돈이었다.

그는 가정의 따스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의 옆에는 엄마 아빠가 계시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다. 두 분 다 살아 계시지만 불행히도 함께 지내지는 않았다. 그래서 정규를 기르고 돌보아 준 사람은 할머니였었는데 그 할머니마저 작년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는 그 후로 지금까지 큰 고모댁에 얹혀 살고 있다. 글자 그대로 얹혀서 사는 것이어서 그의 마음이 어떠하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고모님도 혼자 힘으로 아이들을 기르는데 정규까지 떠 맡아 돌보아야 하니 어찌 그에게 알뜰살뜰하실 수가 있을까. 더구나 우리의 그 유명한 정규를!

그는 제법 유명한 사람이었다. 유명하다는 것은 널리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란 뜻이니 그가 바로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 안에서도 알만한 사람들은 다 그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고 그의 동네에서는 더구나 더 그렇다. 내가 이렇게 단정지어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도 그런 이야기들을 몇 번 들어서 이다. 그중 한 번은 어떤 다른 학년 아이의 어머니가 정규 때문에 나를 찾아 온 일이 있었는데 매우 화가 나 있었다. 나는 그 어머니의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 드려야 했기 때문에 정규의 딱한 처지를 설명하려 했다. 그런데 내가 이야기를 꺼내자 마자 재빨리 말머리를 자르면서,

“누가 그 애의 형편을 모릅니까? 알기는 알지만 하두 말썽을 피니 그렇지요.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 다 물어 보이소.”

이랬다. 그 이야기의 뜻 하나는 정규가 그 동네 사람들에게 죄다 알려져 있다는 것이었다. 어떤 뜻으로건.

그가 주는 인상이 우선 그렇기도 했지만 정규 그는 어디에 내 놓아도 펄펄 살아갈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정규의 그러함이 참으로 다행스럽다고 느낀다. 어깨 축 처져 주눅 들어 사는 것보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우리들 모두는 그를 아낀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뭐라 하던 우리들에겐 그가 소중한 사람이다. 그가 누구와 싸웠건, 누구의 무엇을 슬쩍 했건 그래서 누구에게서 야단을 맞았건 그 일이 우리가 그를 멀리해야 할 이유는 못되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도 똑같이 우리들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란 아주 간단하다. 지난 일년동안 그가 우리들에게 크게 말썽을 부린 일이란 하나도 없었다는 것으로.

그는 참으로 우리들과 즐겁게 지냈다. 그는 헤어지고 나서도 오래 우리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믿어주고 사랑해주었던 우리들에게서 자신의 어려움을 꿋꿋이 이겨내는 용기도 얻었을 것이다.

 

3 박영근


솔밭  5. 25.


미술시간에 솔밭에 갔다.

솔밭은 아주 좋았다. 이름이 붙여져 있는 바위들, 모양이 이상한 나무들이 있기 때문이고 놀기가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을 그릴 마땅한 장소를 찾았다.

“찾았다.” 나는 그 장소에 희안한 나무가 있고 앉기 편한 곳이었다.


교실에 있는지 없는지 표가 나지 않을 만큼 조용히 지냈다. 하는 짓이며 마음 씀씀이는 충청도 양반들이 알았더라면 더 배우고 싶을거였다. 그는 언제나 조용했지만 제 친구들과는 잘 어울리는 것 같았고 공부도 잘했다. 가끔씩이지만 우리들 앞에서 발표하는 태도도 아주 의젓했다. 그러나 그에게 욕심을 좀 낸다면 미워보일지라도 약간 덜렁댔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는 시켜보면 잘 하지만 제 스스로는 뭐든 하려 들지 않았다. 그와 같은 마음가짐은 좋은 면도 좀 있겠으나 안 좋은 점이 더 많다. 좋게 보면 겸손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어떤 일을 할 능력은 가졌는데 그걸 쉽게 다른 사람들에게 내 보이길 꺼려하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일 경우가 더 많다. 자기의 속까지 다 뒤집어 깝죽거릴거야 없지만 사람이란 어느 정도 자기의 삶을 내보이며 살아야 할 필요도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서 자기 자신이 게을러지는 것을 막는 한 방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4 조현상


머리 아픔  5. 31.

 

머리가 아팠다.

다른 날도 샤워하지만 오늘 땀 흘려서 씻었을 뿐인데 이렇게 아플 수가. 그런데도 운으로 저녁을 먹고 나니 이제는 하나도 안 아팠다.

저녁을 먹기 전에 참외, 토마토, 조아 등을 많이 먹었다.

많이 먹어서 빨리 낫는 것 같다.

이제부터 머리가 아프면 많이 먹어야겠다.


나는 처음에 현상이가 무슨 대단한 능력을 가진 줄 알았다. 그 준수하게 생긴 얼굴이 주는 느낌은 아마 누구라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적당한 키에 약간 통통한 몸집, 뚜렷한 얼굴의 선과 짙은 눈썹 아래에 맑게 빛나는 눈은 그를 금방 기억하게 만든다. 더구나 흐리멍텅하기 예사인 우리들과는 달리 말소리마저 또랑또랑해서 그의 예사스럽지 않음을 생각하게 하였다. 그러나 며칠도 채 되지 않아 그 생각은 사라져 버렸는데 그는 우리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우선 수업시간에 하는 그의 짓거리는 우리들의 공부와 상관없는 것이 더 많았고 어려움을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마음도 그랬다. 보통 때는 솜처럼 부드럽기만한 그인데도 자기가 곤경에 빠지게 되면 전혀 그렇지가 않아졌다. 잘못했다고 내가 불러 세우게 되면 못마땅한 표정을 얼굴에 그려서 먼저 나를 한 번 쏘아보고는 다음에는 제 짝지에다 그대로 돌려 눈을 흘긴다. 가볍게 주의로 끝날 일도 그가 그러는 꼴을 보면 내가 그러지 못하고 만다. 나무라는 나를 미워하는 것이야 할 수 있는 일이라 쳐도 어째 함께 숙덕거리던 제 친구를 탓해야 하는건가.

우리는 흔히 자기가 잘못된 까닭을 남에게로 돌리려 든다. 그건 우리들에게 용기가 부족해서 그런 것일 거다. 제 잘난 것은 보란듯이 내세우면서도.

그는 마음만 제대로 고쳐 먹는다면 우리들 중에서도 한참을 앞서갈 사람이다. 우선 다른 사람들이 가지기 힘든 그 똑똑한 말씨만 해도 큰 재산이다. 그가 언제쯤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


 

5 김기범


우리들이 만나 얼마 되지 않아서 모두가 곧 즐거워지게 된 일이 그 유명한 꽈배기 사건이다.

나의 눈에 비친 기범의 짓거리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의 괴상한 것이었다. 신진욱, 김주완 이 둘도 빠져라 하면 설워할 만큼 숙련된 몸짓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들 셋이 교실 앞에서 연출한 그 날의 공연은 돈을 주고도 구경하지 못할 볼거리였었다. 내가 비디오로 녹화해 두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를 했을 만큼이었다.

그는 여러 사람 앞에 나서게 되면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손을 맞잡아 쥐고서는 배 앞에 붙여 쭉 뻗어 천천히 뒤트는데 이 때 팔 못지 않게 다리도 비슷한 일들을 맡아서 한다. 그리고는 눈은 보통 한 곳에 고정시키고는 몸을 한 바퀴 휘돌린다. 이런 몸 놀림을 하는 동안에 국민체조의 전 과정이 충분히 진행되고도 남는다. 그의 몸짓은 어쩌면 그렇게도 유연한지 꼭 발레를 보는 것 같았다.

이 날은 진욱, 주완이가 조연을 해 도왔으니 그 자리가 어찌 빛이 나지 않았을 것인가. 우리들은 한참을 배를 움켜잡고 감상을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꽈배기 삼총사라는 명예가 주어졌었다.

덕분에 그들의 그 재주는 이제 빛이 바래서 예전의 그 솜씨들이 좀체로 되살아 나지를 않는다.

김기범은 권기문, 박기남과 더불어 이름이 ‘기’자 돌림인데 어쩐 일인지 자꾸 헷갈렸다. 내가 ‘기...’하고 끝이름을 몰라 머뭇거리고 있으려면 냉큼 ‘범이요!’라고 받아 넘긴다. 처음 그를 만나는 사람은 그 매끈하게 생긴 겉모습에서 뭔가 보통 사람들과는 다름을 느낄 것이다. 역시 그는 여늬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다. 앞에 얘기한 몸 비비꼬는 것이며, 제가 옳다고 우길 때 핏대 세워 손짓 발짓 해대는 거며, 공부시간에 어떻게 하든 딴 짓 하려 드는 것에다, 일기는 언제나 너댓 줄을 넘어서는 법이 없고, 두 시간을 다 써도 모자라는 미술시간에 그는 십분도 시간이 남아돌아 빈둥거린다.

재미없기로 따지면 그 이상 갈게 없는 것이 지금의 이 학교 공부이지만 그는 아예 공부하고는 담을 쌓기로 작정한 사람 같다. 그러나 나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범이 그는 공부를 잘하던 못하던 그것 때문에 기죽을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니까 말이다.

그는 다른 사람 누구보다도 더 이 세상을 잘 살아 갈 사람이다.



6 김준현


곱상한 얼굴에 별 표정 없이 우리들 옆에 비껴 앉아 있는 그는 무엇으로 살아가는 사람일까? 누구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말이 아니라 준현이는 정말 무슨 재미로 살아갈까?

그는 하는 일이 없다. 몇몇 사람과는 어울리고 있지만 그들과 놀때도 그가 하는 일은 별로 없는 듯 하다. 그렇게 숫기가 없으면 보통 제 할 일은 잘들 하는데 그는 그마저도 그렇지 않다. 과제물 해 오는 거며 준비물 챙겨 오는 상태는 다른 사람들보다 결코 낫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다 우리들과 어울려 일을 해도 그는 늘 따라만 다니고 그기에 한 술 더 떠서 제 할일도 잘 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는 마치 금방 누가 막 윽박지르기라도 하는 듯이 어깨가 움츠려져 있다. 기 좀 펴고 살면 안될까.

그런 그도 생기를 좀 가지는 건 체육시간이다. 교실에서 그렇게 맥없이 지내는 그도 운동장에선 기운이 펄펄 난다. 뜀박질은 신진욱에 버금가며 축구 피구 할 것 없이 운동에는 누구 못지 않다.

그는 그렇게 살면 안될까. 운동장에서처럼 그렇게 신나게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교실은 운동장 같이 넓지 못해서 그는 그렇게 풀이 죽는단 말일까 교실에만 들어 오면.

그의 교실은 운동장으로 정해주면 어떨까.



7 이승수


쌍거풀이 진 둥그런 두 눈은 뭔가 자신이 없는 듯한 인상을 준다. 좋게 말하자면 그는 묵직하고 점잖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 승수 자신이 그 무게를 잘 이기지 못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할 말이 있고 할 일이 있을 때는 그것들을 용감히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승수가 다른 사람들에게 너그럽고 친절한 것은 좋지만 나는 어쩐지 그것이 자기가 그들을 나무랄 용기가 없어 그런 것 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한 해를 같이 지내면서 승수 때문에 우리들이 곤란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렇다고 우리들이 승수에게서 별다른 도움을 받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는 자기 일을 묵묵히 하고 지냈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남들의 일에도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나는 그가 그러고 싶어 친구들과 휩쓸리지 않았다고는 보지 않는다. 다만 여러 사람과 뒤섞여 어우러지면 그 때문에 생겨지는 온갖 혼란스러움을 그는 싫어하는 듯 하였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승수는 자기가 생활하고 있는 방식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자기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제 몫을 제대로 지키며 사는 사람 승수, 이제 그도 남과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느꼈으면 좋겠다.



8 김주완


그는 꽈배기 삼총사 가운데의 한 사람이었다. 그만큼 그의 몸놀림은 특색이 있었다. 언제부터 밴 습관인지는 모르지만 그러는 그의 발표 태도는 처음에는 한 마디로 형편없었다. 덕분에 우리들은 많이 웃고 즐거웠지만.

그런데 말씨는 그러는 그의 몸짓에 어울리지 않게 또렷또렷했다. 또한 꼬리가 제대로 빠지지 않는 그 버릇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의 말들은 대단히 조리있고 논리적이었다.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사람들을 더 웃기려면 그는 좀더 몸을 배배 꼬고 틀어야 할 것이다.

그는 친구들이 매우 많다. 그들과 부지런히 뛰고, 달리고, 소리를 질렀다. 조용하던 교실이 그가 나타나기만 하면 시끄러워졌다.

그는 뜻밖에도 글을 잘 썼다. 그가 하는 짓거리만 보아왔던 나는 그의 글을 읽고 그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화장실에서


아빠, 누나, 나에게는 참 이상한 버릇이 있다.

그 버룻은 화장실에 갈 때 곡 무엇을 들고 가는 버릇이다.

나는 만화책이나 동화책을 들고 간다.

하나님께 죄송한 일이지만 어쩔 때는 성경책을 들고 들어갈 때도 있다.

누나는 카세트 녹음기를 갖고 들어가 팝송을 듣거나 참고서를 가지고 들어가서 주로 본다.

아버지는 주로 신문을 들고 들어가셔서 읽던 기사를 다 읽어야만 나오신다.

이렇게 화장실에서 글을 읽은 것이 위생상 좋지는 않겠지만 그 재미는 또 다르다.

혼자 마음껏 웃는 재미는 말할 것도 없지만 책 내용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화장실에서 책을 보는 것을 나무라신다.

“책 읽을 곳이 없어 하필 거기서 읽니?”

“그리고 여보, 어른이란 사람이 모범은 못 보여 줄 망정 버릇을 더 나빠지게 하고 있어요?”

하지만 난 이 버릇을 고치기가 어려울 것 같다.

만약 아무것도 안 가지고 들어가면 변기에 앉아 무엇을 하나?

두리번 두리번

세면대를 보고, 거울을 보고, 이렇게 지루하게 앉아 있다가는 대변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책을 갖고 들어가면 화장실을 금새 아늑한 도서실이 된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책에 깊이 빠져 내가 지금 화장실에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을 때도 있어서,

“빨랑 나와!”

하시는 엄마 목소리에 놀라 나오곤 했다.

‘아, 이 버릇을 식구 모두가 고쳐야 할텐데!’


그는 부지런한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좋지 않은 일에 스스로 책임을 지려하는 일도 별로 없었다. 평소의 그는 친구들 앞에서 열심히 뛰었지만 여러 친구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그런 마음은 덜 가진 것 같았다. 그가 골목대장 노릇을 잘 했던 것은 그 자신에게서 나오는 멋스러움에서가 아니라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는 큰 키에 항상 발그레한 얼굴을 가졌다. 가끔 안경을 끼었지만 벗고 지낼 때가 더 많았는데 그의 전체적인 느낌은 매우 부드럽다는 것이다. 실제 주완이는 인정이 많고 다정했는데 그러나 그의 맺고 끊음이 없는 성격이 그 자신의 많은 좋은 점들을 가렸던 것 같다.

그가 4학년 때보다 형편없이 낮은 성적으로 5학년을 마치게 되어 풀이 많이 죽었다. 그러나 그는 아마 곧 깨닫게 될 것이다. 공부는 결코 남이 대신 해 줄 수 없다는 것을.



9 정수근


언젠가 다들 집으로 돌아가고 나 혼자 자료실에 남아 있었을 때, 문이 열리며 뜻밖에도 수근이와 최인석이가 또 다른 한 녀석과 함께 들어섰었다. 표정이 굳은 걸로 봐서 뭔가 잘못된게 분명했다. 그는 나에게 무슨 종이를 한 장 건넸는데 그기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 이 사람들은 장난감 총을 가지고 놀고 있었습니다. 바른 지도바랍니다.’


교장선생님께서 그들을 나무라신 것이었다. 그래서 담임인 나에게로 보낸 것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물론 화도 났다. 왜냐하면 며칠 전부터 교실에 그 무슨 비비탄인가 하는 장난감 총알이 굴러 다니길래 아하 벌써 계절이 바뀌어 가는구나 하고 우리 모두에게 일장 훈시를 했었기 때문이었다. 총은 좋은 것이 아니라고, 무얼 쏘아 죽이는데 쓰이는 총을 우리가 벌써 갖고 놀 필요는 없다고, 장난감이지만 그래도 총은 갖지 말자고 등등 잔소리를 해댔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엄포를 놓았었는데 그것은 오늘 이후로 학교에 총을 갖고 오면 내가 탕탕 부숴버리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말 한지 며칠이 지났다고 이런 일이 벌어지나.

자기들 이야기는 학교 마치고 집에 갔다가 다시 학교에 놀러 오면서 갖고 왔다는 거였다. 어쨌든 나로서는 매우 화가 났고 뒷날 다들 보는 앞에서 그 총들을 정말 부수어버렸다.


무엇을 찾는지 두리번거리는 그의 동그란 두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리고 가만히 있을 때 보다 뛰는 때가 많은 그는 언제나 땀에 젖어 발갛다. 조그맣고 얇다란 입술에 매끈한 그의 얼굴은 순진함이 배어난다. 별로 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1학기 때의 그의 성적은 남학생 중 첫째였었는데 그는 학년말까지 그것을 지키지는 못하였다.

그는 말이 좀 느린 편이다. 책을 소리내어 읽는 것도 그랬는데 한 번은 그때문에 온 교실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우리들은 그를 좋아했었는데 그의 어수룩하면서도 남들에게 전혀 싫은 일 하지 않았던 것이 그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수근이는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남들이 좋아한다는 것 만으로 그 자신이 남들에 못지 않은 건실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항상 자기보다 좀 모자라는 구석이 있어야 남들을 좋아하는 법이니까.



10 정우영


그는 항상 생각에 잠겨 있었다. 우리들이 재재거리고 들까불어도 그는 쉽사리 쏠리지 않았다. 모두가 다 그렇다 해도 그는 한 번 더 생각했을 것이다. 어른들이 그를 가벼이 본다면 반항심이 많은 아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말은 대부분 옳고 생각이 발랐다.

그런 그가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의 아버지께서는 삼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하셨다가 이제 그 후유증으로 지난 가을 시월 삼십일에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병원생활을 오래하셔서 그의 놀라움은 크지 않았겠지만 그 슬픔이야 남이 어찌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그의 나이를 건너 뛴 듯한 우울함은 이러한 남모를 아픔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맑고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그는 운동신경이 남달리 모자랐다. 그 덕분에 우리들에게서 자주 핀잔을 들었다. 그리고는 마음 상해 했다.


달리기  3. 31. 수


나는 이 날 매우 기분이 않좋다. 왜냐하면 내가 달리기를 못해서 우리 반이 꼴찌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천천히 뛰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

하여튼 아이들은 나를 욕하였다. 나는 욕을 들으면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달리기를 못할까? 라는 생각이 몇 번이고, 아니 계속 떠올랐다. 나는 밥을 먹으로 집에 가서 계속 울었다.

밥을 먹고 학원에 갔다.

학원에서 그림과 공부를 하였다. 학원을 갔다 와 보니 다섯 시가 넘었다. 그래서 나는 방안에 들어와 텔레비젼을 보고 낮에 한 일을 생각해 보고 또 울었다.


그러나 우영이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물러서 있는 것은 잘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나 혼자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영이도 우리들에게로 다가와서 같이 손을 맞잡아야 한다. 그리고 함께 뛰어야 한다.



11 김대훈


제말마따나 꼭 메주덩이 같이 생긴 그의 머리와 두툼한 눈꺼풀은 제주 하루방을 보는 듯 하다. 그기에다 말씨마저 느릿느릿해서 그가 풍기는 분위기는 다른 사람들과는 애초부터 틀렸다. 무슨 일엔가 궁금한 것이라도 있으면 심각한 낯빛으로 내게 와 묻는 그의 자세는 사뭇 진지하기만 하다. 그리고 우리들 앞에서 하는 차분하면서도 조리있는 이야기는 모두의 머리들이 끄덕여지게 만들었다.


단소와 셔틀콕  3. 31. 수


“아저씨! 아저씨! 단소 있어요?”

여러 아이들로부터 둘러싸여 나의 소리도 못 들으셨다. 아이들이 모두 간 후에 나를 보시고 뭘 줄까? 하시고는 씩 웃으셨다. 나는 또 한 번 ‘단소요’란 말을 했다. 그랬더니 저쪽 구석에서 꺼내시며,

“대나무 줄까? 이거 플라스틱 줄까?”

하셨다. 나는 값이 싼 플라스틱을 샀다. 그것은 3000원, 내가 들고 온 돈도 3000원이었다.

그 돈을 내고 돌아오며 아이들이 셔틀콕을 사가지고 가는 것을 보았다. 마음으로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영이와의 약속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우영이는 채를, 나는 셔틀콕을 가지고 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단소를 산 집에 가서 끼워 주는 돈으로 공을 사기로 하였다. 그러나 200원이 모자랐다. 그래서 외상, 모레 가지고 오기로 하였다.

나는 내 기억하는 부분이 참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또 원망스러웠다.


그가 쓴 이 글은 자기의 생각을 잘 나타냈었는데 소개되어 모두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었다. 그의 생각은 대부분 올곧고 진실하였다.

그런 그도 몸이 둔해서 여럿이 어울려 뛰놀 때는 많이 쳐진다. 꼭 그래서 그런건 아니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둘레에서 빙빙 돌고만 있을 때가 더러 있었다. 평소 다른 사람들에게 싫은 일을 할 리 없는 그이고 보면 그건 좀 뜻밖의 일인 셈이다.

대훈이 그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꼬치꼬치 따져 보고 싶을지도 모른다. 아마 짐작이 맞는다면 그는 앞으로도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세상 일이란 그렇게 쉽게 따져져 알아지는 게 아닌 것 같은데 어떨지... .



12 최인석


내가 우리들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갸름한 얼굴에다 몸매 또한 그런데 하는 짓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더 많았다. 수업시간에 공부 제대로 한 적이 별로 없었는데 그는 항상 만화만 그리고 앉았었다. 그건 나 만이 그렇게 본 것은 아니었다.


조금 성격이 급하고 그림을 자주 그린다.

또 그림은 거의 만화에 나오는 그림이었다. 인석이는 그림을 잘 그리는데 선생님께서 어른 흉내를 낸다고 한다.


그는 나에게 숨길게 많았는데 그때문에 나를 힐끔거리는 비율이 어느 누구보다 높았다. 생각해 보면 그건 당연하기도 하였는데 만화 그리랴, 장난감 만지랴, 옆 친구와 속닥거릴랴 하는 이런 일들이 어찌 내 눈에 띄지 않고 해 낼 수가 있을건가. 당연히 불러 세워져 꾸중도 많이 듣고 벌도 많이 썼었다. 그러나 학년을 다 마쳐가는 지금까지도 그 버릇들은 여전한데 나중 어떻게 되려는지. 만화가가 되던, 화가가 되던 그건 인석이의 자유지만 그렇게도 책을 싫어한다면 나중 인석이는 정말 무식한 그림쟁이 밖에 더 될까.



13 박추상


중간쯤 되는 키에 얼굴은 동글동글하게 생겼었다. 머리가 약간 곱슬머리였었는데 언제나 제 친구들과 함께 뛰어서 불그레한 얼굴에 땀이 번졌었다. 그는 자주 웃고 또 웃을 때는 하얀 이빨이 가지런히 내보여서 남들이 좋아할 만한 인상을 주었었다. 좋게 말하자면 귀엽게 생겼다고 하겠지만 이제 다 큰 사람이 귀엽다는 말만 들어서 되겠는가. 어떻든 그는 화를 별로 내지 않고 싱글거린다. 아마 훗날 그를 기억한다면 그 웃는 얼굴만 떠오르게 될 것 같다. 우리의 바로 옆 교실이 6학년 1반인데 그 교실에는 추상이의 형이 살았다. 덩치도 크고 잘 생겼는데 항상 제 동생이 궁금한지 들여다 보았었다. 그들 형제는 남달리 사이가 좋은 것 같았다. 추상이는 항상 웃는 그 얼굴과 같이 하는 일들이 별로 심각하지가 않았다. 자기가 맡은 일들을 열심히 했지만 자기가 앞장을 서는 일을 생각하지 못하는 듯 하였다. 그가 뛰노는 주변의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는 항상 남의 뒤에 서서 따라만 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제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14 권기문


약간 검은 얼굴에 코가 크고 입술이 두텁고 키는 보통이다. 그는 나와 이 학교에서 2년이나 같이 살다가 재작년에 졸업한 권정희라는 사람의 동생이다. 그의 누나도 그랬지만 기문이는 별로 들썩거리지 않고 지냈다. 자기가 맡은 일에는 군소리 없고 친구들과 다툴 일도 없이 조용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여러 사람 앞에서 하는 학급회의 사회라든지 하는 일들은 보기와는 다르게 잘 치러냈었다. 상당히 침착하고 말도 조리있게 잘 했다.

그는 2학기엔가 학급위원으로 뽑혔는데 그게 꽤 흡족한 듯 하였다. 우리들에게서야 학급위원 돼 봐야 별볼일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전교 어린이회에는 그들이 가야 할 것 같아서 여덟명이 번갈아 갔었는데 그나마 나중에는 누가 갈 차롄지조차 모를 정도가 되었다. 왜냐하면 다른 반들처럼 학급위원들만 학급회의 사회자가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기문이 그는 자기 차례를 잊어먹는 법이 없었다. 회의록을 들고 꼭꼭 전교어린이회에 갔었다. 그건 자신이 학급위원이라는 사실을 그만큼 대견하게 생각했다는 뜻도 있었지만 또한 다른 사람들보다 자기의 할 일에 그만큼 성실하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기문이가 그만큼 성실하니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성실’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정성스럽고 거짓이 없다라고 풀이되어 있다. 이 말을 우리는 흔히 맡은 일에 열심이다는 뜻만 살려 쓰는 것 같다. 그리고 좀 더 깊은 곳에는 불평이 있더라도 참고 그저 묵묵히 제 할일을 한다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무턱대고 싫다는 소리를 지르라는 것이 아니다. 꼭 할 이야기가 있는데도 그 말을 못하는 것은 바보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든.

나는 기문이와, 다른 비슷한 성격의 사람들에게는 꼭 이 말을 해 주고 싶다.



15 이성민


그는 김대훈과 친하게 지냈는데 그 둘은 사실 서로 많은 점에서 닮았다. 이성민이 좀 더 활발해서 그렇지 생각하는 거며 하는 짓거리가 엇비슷했다. 게다가 생김새에서도 그 둘은 같은 분위기를 풍겨서 한참 나중 세월이 흘러 이 둘을 생각하게 되면 우리들은 틀림없이 헷갈리게 되리라. 김대훈이 메주덩이라 했는데 그는 좀 납작한 메주이고 이성민은 앞뒤가 툭 불그러진 짱구 메주라 할 수 있다.

그는 대장인 나를 다른 어느 누구보다 겁내지 않았는데 나에게는 할말 못할 말이 따로 없어 제 친구 대하듯 하였다. 그건 우리들 모두가 어느 정도씩은 가지고 있는 감정이었지만 유독 그에게는 증세가 더 심했다. 그래 가끔은 이 건방진 사람을 어떻게 골려줄까 하고 나 혼자 궁리도 하였다. 생각만으로 끝나버렸긴 했지만 적당한 거리가 있었으면 틀림없이 나는 그를 그랬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속으로는 그러는 그의 품새가 전혀 밉지 않았다. 그건 내가 항상 열 내어 이야기하는 할말 있으면 해야지 입 두어 뭐할거냐는, 입이 뭐 밥만 꾸역꾸역 쳐 넣는 그런 물건이냐는 평소의 내 주장을 그만큼 잘 실천하는 것이니 오히려 대견해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게 버릇이 되어 다른 어른들에게 그랬다가 봉변당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제 그도 철이 들어 그건 누구에게나 통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을거다. 아니 어쩌면 이건 내가 지나치게 걱정을 하는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의 많은 어른들은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 인격을 따지는 바보스러움에서 깨어난 듯 하니까.

이성민 그는 제 할 일 남의 할 일을 구분할 줄도 알며 말과 행동이 비교적 맞아 떨어지는 좋은 사람이었다.



16 공명식


선조께서 공자가 아니신지 우리의 공명식 그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예의범절하고는 별로 친하지가 못하였다. 자그마한 체구에 떴는지 감았는지 분간이 되지 않는 가느다란 실눈을 하고서 나를 바라볼 때는 이제 나도 어쩌지를 못하게 되었다. 머리가 절대 나쁘지 않다는 것은 그가 하는 걸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는데도 교과서 공부하고는 영 남이었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딱지며 구슬에다 별별 요상스런 장난감들로서 그의 주머니는 이런 것들로 항상 불룩하였다. 물론 그런 것들은 철이 바뀜에 따라 어김없이 바뀌었다. 아니 어쩌면 그의 손에 쥐어진 장난감에 맞추어 계절이 바뀌는 지도 몰랐다.

그의 말과 행동은 좀 거친 편이어서 ‘친절한 명식’이라거나 ‘상냥한 명식이’라는 표현은 그에겐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아주 건달이라거나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말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좋게 말하자면 자기의 생각을 분명히 하고 지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지내는 동안 자주 말과 행동이 맞설 때가 많았을 것이다. 그가 버릇이 없어 보이는 것도 어쩌면 그의 이러한 성격 때문일지도 모른다.

공명식 그는 그대로여도 괜찮다. 억지로 고칠 필요는 없다. 누가 뭐라고 하든 스스로가 생각해서 판단하고 결정할 문제이다.



17 신진욱


9. 9. 목 맑음


여학생들은 무용 연습으로 운동장에서 부채 들고 법석인데 남학생들은 마땅히 할 일들이 없어 속들이 끓는다. 못하랬으나 연신 창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여섯 째 시간이 시작될 무렵,

신진욱이 그는 내준 과제 일찍 마치고 저 혼자 빈둥거렸다. 그러다 화장실에라도 가려는건지 골마루로 발을 막 내딛는 순간 비명이 들렸다.

마침 정나리가 교실에 들어오다 그와 부딪친 것이다. 모서리를 돌다 그랬으니 서로 잠깐 마주 안게 된 꼴이었다.

아이들이 함성을 질렀다.

“진욱이 좋겠다!”

안 그래도 발그레한 나리의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둘은 아이들이 히죽거려도 별로 쑥스러워 하지 않았다.

진욱이는 싱글거렸고 나리는 벙글거렸다.


10. 15. 금 맑음


완월폭포로 소풍가던 길

우리들은 숲길을 굽이 돌아 가을 한 가운데를 걷고 있었다. 곁에 가던 신진욱 그가 나에게 불쑥 말을 건다.

“선생님, 고치 커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다.

“그래, 너보다 클거다 어른이니까.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그냥요.”

우리 둘은 정말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소풍길을 걸어갔다.


신진욱 그는 꽤나 욕심쟁이였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무슨 일에든 끼여들고 그리고 이겨야 직성이 풀렸었다. 나중에는 논다고 좀 떨어지긴 했지만 공부도 썩 잘하는 편이었고, 운동도 학교 육상선수로 뛰었으며, 직접 내 보이진 않았지만 싸움도 잘 했고 거기에다 입심도 좋아 그가 핏대를 올리며 하는 말씨름에는 당할 장사가 없었다. 우리들이 처음 만났을 무렵 그의 말은 매우 독특했는데 그건 말끝에다 거의 항상 ‘임마’를 덧붙이는 점이었다. ‘그래, 임마.’ ‘왜, 임마.’ ‘어째서, 임마.’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하도 그 말들이 매끄러워서 ‘그래이-마’ ‘왜이-마’ ‘어째서이-마’로 소리났는데 나도 덩달아 ‘진욱이-마, 이리 나와 봐라이-마.’로 부르곤 했다.

그는 여학생들에게 대한 흥미를 겉으로 잘 드러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걸 부끄러워하는 것과는 달랐다.

우리들 중에서 나를 제일 골치 아프게 한 사람을 들라면 나는 당연히 그를 첫 손가락에 꼽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누구를 가장 사랑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누구라고 대답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를 다 사랑했으니까. 내게 골머리를 앓게 했던 신진욱 그도 물론.

겨울방학이 반쯤 지나가던 어느 날.

우리는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누구가 먼저였는지 서로 손을 마주 잡았다.

그의 얼굴에는 반가움이 흘렀다.

나도 그랬다.



18 박광모


“광모야, 자리에 좀 앉아.”

이게 수업 신호처럼 되었다. 그리고서도 시간 내내 이 말은 몇 번 더 되풀이 되어야 수업이 마쳐졌다. 그의 뱃속에다 에디슨이 수소가스를 채웠는지 몸은 항상 둥둥 떠 돌았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광모 그가 제 자리에서 가만히 앉아 마쳐진 수업시간이 아마 별로 없었을 것 같다. 다들 조용히 앉아 쓰기라도 하고 있을 때 그는 항상 이리저리 어슬렁거린다. 밖에서 무슨 이상한 낌새라도 있으면 일등으로 일어선다. 그가 수업시간에 앞을 보고 똑바로 앉아 있다면 그건 그의 자세가 아니었다. 끊임없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간섭을 해댄다. 그러고서도 언제 내 말은 듣는지 제 구미 당기는 이야기가 나왔는가 싶으면 질문이 꼬리를 문다. 우리들 모두 어느 정도 그렇지만 그의 호기심은 유달리 더 많은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들과 분명히 다른 점은 그는 그 호기심을 잘 참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때의 모습은 평소의 그와는 또 다른 사람이었다. 자연시간 과학실에라도 가는 날이면 그는 온통 열에 들뜬 듯 다른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눈은 반짝거려 빛을 내고 입맛을 짝짝 다신다. 그러다 그는 정말 내가 내 지르는 고함소리에마저 귀머거리가 된다. 그리고는 밖으로 쫓겨나곤 했다.

그는 매끈한 얼굴에 키는 큰 편이었다. 그러나 자기 일에 그처럼 열중이었던 그도 남을 위해 땀을 흘리는 일에는 매우 인색해 보였다. 그의 주변 사람들이 그와 함께 일하기를 싫어했다는 것은 그의 그런 점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그는 매우 똑똑한 사람이니 아마 곧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란 자기 혼자 이 세상을 살아가기 좀 힘들다는 것을.



19 이상현


학년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나는 그를 어떤 방식으로 대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서로가 낯이 설어 말이나 행동을 조심하고 있을 때에 맨 먼저 내게 다가온 사람이었다. 그의 표정만큼이나 조용히 와서는 내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의 차이점을 아세요?”

아마 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래되어 그때 그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정확히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틈만 나면 와서 하는 이야기들의 주제는 대개 그런 것들이었다. 저 멀리 유럽의 어느 도시 이야기를 물어보는가 하면 그쪽에서 제법 이름깨나 알려졌던 몇몇 사람들이라든지 그러다가 어느 때는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고 소멸되어 가는지에 대해서까지 그의 질문은 끝이 없었다. 물론 그는 그런걸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대개 그리 흡족한 것이 못되었기 때문에 나는 다시 그의 자세한 설명을 들어야 했다.

그는 그의 또래 사람들과는 별로 가까이 지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몸이 매우 허약했다. 파리한 얼굴이며 가냘픈 팔다리는 메고 다니는 책가방마저 그를 눌러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심심하면 터져나오는 코피도 우리들을 안쓰럽게 했었다. 그것이 그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상현이의 처지로는 그들이 너무 거칠고 난폭했던 것이다. 웬만큼 했으면 내가 상현이 더러 진흙목욕을 권했을까. 그러나 나는 그것만이 전부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는 그 또래의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뭔가를 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말하자면 그토록 자주 내게 와서 이야기하던 그 수준의 것을 자기는 가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 내비치는 몇 마디의 영어들도 그의 그런 생각을 돕는 것 같았다.

상현이는 우리들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많은 것들을 가졌다. 그가 가진 그런 것들은 아주 소중한 것들이다. 그와 꼭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은 상현이가 가지지 못했거나 가지기 어려운 것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중함도 똑 같다. 운동장에서 못한다고 빼버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잘하는 기색이면 모두 박수치며 좋아해 주던 그런 따뜻한 마음도 우리들 다른 사람들은 가졌다.

우리들은 서로 다름으로서 ‘나’가 되고 나의 것을 못 가진 남을 위하여 ‘우리’가 되는 것이다.


20 박기남


9월 9일  목  맑음


4째 시간.

우리는 운동장에서 전교생 모두와 운동회 준비에 먼지를 마시며 대신 땀을 흘리고 있었다.

체육주임이 그 특유의 심각한 얼굴로 뛰어오더니 방송담당자가 없어 교무실에 좀 가 달랬다. 안 그래도 덥고 할 일은 마땅찮았던 참인데 잘됐다.

교무실에 들어서니 윤교감선생님이 마침 잘 왔단다. 어제 학부모에게서 전화가 왔었는데 연락을 못했으니 지금 전화하라는 말씀이다. 박기남이 어머니가 전화를 했었단다.

전화를 했으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점심시간.

점심을 먹고 화장실에 가려다 골마루에서 기남이를 만났다.

“야! 기남이, 엄마 어제 전화하셨다는데 너 혹시 아니?”

“예”

다행스럽게도 그가 알고 있다.

“그래, 무슨 일이라든?”

“엄마가 심심해서요.”

얘는 걸핏하면 심심해서다.

“그래? 나도 심심해지면 엄마께 전화하겠다고 말씀드려라.”

“예”

그도 나도 감정 꾹 누르고 되지 않는 말을 주고 받았다.

그 후 나는 심심해진 적은 있었으나 전화는 하지 않았다.


기남이는 자그마한 키에 안경을 썼다.

항상 교실 안팎을 뛰며 지내서 동그란 얼굴에는 거의 언제나 땀이 송글송글 맺혔었다. 가만히 있을 때란 별로 없고 쉬지 않고 무슨 일이든 하고 있었다. 줏대가 세어서 남의 말에 끌려 기우는 일도 없고 눈치를 살피는 따위의 짓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러면서도 자기하고 싶은 말은 척척 잘도 해대었다. 아마 자기보다 몸뚱아리 더 큰 사람들과 자주 다투었던 것도 그의 그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머리가 아주 좋은 편인데도 그걸 교과서 공부하는데는 별로 이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가만히 두면 녹이 슬텐데.

 


21 박민승


93. 11. 1. 월


점심시간.

정수, 영근, 황성민 그리고 민승이와 도시락을 먹었다.

그는 언젠가도 내게 결혼했느냐고 물었었다. 결혼했었다고 했는데 오늘도 그랬다. 그래서 농담으로 아직 총각이니까 혹시 예쁜 처녀 있으면 중매하랬다. 옆에서 듣던 유정수가

“야, 민승이 네 동생 시집보내라. 그러면 선생님보고 매형이라 불러도 된다.”


민승이는 만만하니까 쉰이 낼모레인 나를 자기 또랜지 아는가보다. 그는 그만큼 철이 덜 든 것도 같다. 하얀 얼굴에 전혀 모진 구석이라고는 없어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뒤만 쫓는다. 그렇다고 그가 언제나 물렁물렁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그렇게 보이니까 그를 짓궂게 굴던 사람과 크게 치고 받은 일도 있었다. 앞에 불려나와서도 씩씩거리며 그 친구를 노려보던 그의 얼굴이 나는 왜 그렇게 흐뭇하고 대견했었는지.

그는 조용하고 착했으며 언제나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22 전현배


이 사람은 처음에 꽤 미웠었다. 하는 짓이 도무지 제자리 잡은 게 없고 자기 마음대로였었다. 높은 도수의 안경을 걸치고는 내가 뭐라고 하면 못마땅한 기색이 뚜렷했다. 자기 딴엔 공부도 어느 정도 하는 데다 입심까지 있으니 그러는 모양이었지만 도통 나는 별로였었다. 사실 그는 우리들 중에서 말을 조리있게 하는 몇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가 우리 앞에서 자기 말을 하고 있을 때는 다시 한 번 더 쳐다보여졌다. 그러나 다른 때는 영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하는 짓거리가 볼상 사나워 ‘꽥’ 하고 불러 세우면 그냥 ‘왜 그러냐’는 투였다. 조금치도 두려움이나 어려움이 없었다. 눈이 나빠 더 그래 보였는지도 몰랐다. 그러던 그도 차츰 표정이 누그러져 갔다. 어떤 결정적인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와 함께 우리의 사이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되어졌었다.

큰 키에 비해서는 작은 얼굴이 두꺼운 안경에 다 덮혔다. 가끔 안경을 벗어 드러낸 그의 두 눈은 거의 감기듯 눈꺼풀이 두터웠다. 속눈썹만이 유난히 길고 숱이 짙어 여자들이 탐낼 만도 하였다. 처음에는 수업시간에 그렇게 외면하던 그가 무슨 까닭인지 날이 갈수록 자세가 발라져 나중에는 불상처럼 꼼짝 않고 나의 말을 듣게 되었다. 이제 현배는 도를 깨치려 하나 보았다.



23 김성균


우리들 중에는 그 속을 짚어 짐작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몇 있었는데 성균이 그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공부시간에는 여간해서는 공부하지 않으려 했었다. 제 할일을 스스로도 할 생각은 않았지만 억지로 시켜봐도 지켜보는 내가 더 힘이 들 지경이었다. 게다가 그의 얼굴은 언제나 굳어 있었다. 표정이 그렇다는 것은 주변에서 그를 알게 모르게 억압하는 이들이 있다는 뜻이었다. 나도 그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으나 아무래도 그 원인의 모두는 아니었을 것이다.


5. 17.


오늘은 비가 아주 많이 왔다.

나는 기분이 안 좋았다.

학교를 마치고 학원을 가려고 했는데 그냥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는 집에서 책가방을 챙겨 학원에 갔다.

가니 선생님이 문제집을 4장이나 하라고 했다.

나는 코피가 터질려고 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없을 때면 종종 내 책상머리에 왔다. 그리고 내 옆에 서서는 책상에다 그림을 그리는지 글씨를 쓰는지 손가락으로 금을 긋곤 했다. 꼭 무슨 할 말이 있는 것도 같은데 말을 걸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휭하니 달아나버렸다.

나도 그가 나에게 꼭 할 말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사람이 그리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를 좀 내버려 두는 사람을.



24 이재관


정규의 결석  4. 26.


오늘 내 짝인 정정규가 결석을 했다.

나는 마음속에는 기뻤다. 왜냐고 하면 정정규가 날 계속해서 때려서 나는 기분이 않조았는데 오늘만은 그렀치 않았다.

정정규가 2학년 때 반 친구에게 맞았다.

‘정정규가 왜 결석을 했을까?’


우리들이 만나서 처음에는 서로 아는 것이 없으니 키대로 앉을 자리를 정했었다. 그래서 재관이는 정규와 같이 앉았는데 정규 이 사람이 알게 모르게 우리 재관이를 많이 괴롭혔나 보았다. 우리들 중에서 정정규가 가장 작았고 그 다음이 재관이였다. 키로선 정규보다 약간 컸지만 그가 주는 인상이 오히려 그가 더 작아 보이게 했다. 그는 생김새만큼이나 모든 일들에 자신 없어 했는데 그런건 차라리 정규에게서 배워야 할 점이었다.

그는 남에게 싫은 일 할 사람이 아니었으며 착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성실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교과서나 공책 이외의 준비물이 필요한 시간에 그는 그런 것들을 제대로 갖춰 온 일이 거의 없었다. 마련하는데 전혀 돈이 들지 않는 것들도 또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는 것들도 그는 챙겨 올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어찌보면 그는 구경꾼이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삶이란 나 자신이 구경꾼으로서만 살아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의 삶의 주인공은 어디까지 나 자신이 아닌가.



25 최광일


목욕  4. 17. 토  맑음


나는 오늘 목욕을 하였다. 우선 옷을 벗고 들어가 목욕을 하였다. 우선 비누칠을 하고 때를 벗겼다. 아주 많이 나왔다. 그리고 머리를 감았다. 감고 나서 세수를 하고 딱았다. 그리고 옷을 입었다.


이 글은 그의 성격을 아주 잘 나타낸 글이다.

목욕을 한다 - 옷을 벗고, 비누질을 하고, 때를 벗기고, 머리를 감고, 닦고 그리고 옷을 입는다. 이 얼마나 간결한 표현인가. 군더더기 하나 없이 그는 목욕이라는 ‘일’을 이와 같이 나타냈다. 이 글 속에는 느낌조차도 생략해 버렸다. 느낌이 있었는데 생략했는지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목욕을 하면서 전혀 느낌이란 것이 없어서 못썼는지 그의 이 글 속에는 그런 것이 없다. 사람이 일을 하는 데 어찌 나무토막이나 돌맹이 같이 생각이 없을 수 있을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나는 어쩐지 그가 아무 생각없이 목욕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자꾸 하게 된다.

그는 우리들에게 자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 적이 거의 없었다. 평소의 그는 자기 혼자였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큰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우리들 중에서 누구보다 정직했고 맡은 일에 열심이었다. 남들에게 시비를 걸 일도 없었고 규칙을 어긴다는 것은 애초부터 그에겐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도 그에게는 가까이 다가서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는 나중에 목사가 될거랬다. 나는 목사라는 성직자가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가지는 한 가지 바램은 지금의 그가 아닌 부드러운 목사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는 보통 키에 뚱뚱했으며 목사가 될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26 이정민


11월 2일 화요일


그날 우리 반에서는 큰 사고가 났었다. 정민이가 다리를 부러뜨린 것이다. 뼈사진에서 얼기설기 금이간 그의 다리 상처는 바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섬뜩했다.

둘째 시간을 마치고 쉬는 시간이 좀 지나치게 시끄럽다고 느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 녀석이 죽는 소리를 냈다. 틀림없이 엄살이겠거니하고 난 하던 일을 계속했는데 우는 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우우하고 둘러선 아이들을 떼어내고 보니 정민이였다. 정말 아픈 모양이었다. 양호선생님이 병원에 가보아야겠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에도 그렇게 많이 다친줄은 짐작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뼈사진을 두고 심각해 하시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다.

정민이는 다리에 기브스를 하고 6주일, 그리고 입원 치료를 1주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날부터 우리들은 교대로 병원에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잖아도 무료하던 교실에 그런 일이 생기니 신이 나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문병갈 희망자는 남자들이 오히려 더 많았다.

그는 그후 6주일이 지나도 기브스를 풀지못하고 결국 겨울방학까지 학교에 나오지 못하고 말았다. 그가 남긴 빈자리를 바라볼 때 마다 우리들은 우울했었는데 정작 정민이 그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는 조그만 키에 까무잡잡한 얼굴을 하였다. 늘 웃는 얼굴이었는데 웃을 때 드러나는 하얀 이빨이 인상적이었다. 항상 서태지 모잔가 하는 것을 쓰고 다녀서 멀리서도 쉽게 그를 알아 볼 수 있었다. 학교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데면데면해서 남자 여자 가림이 없이 그를 좋아했다. 그림도 잘 그려서 몇 번인가 자그마한 상도 받았었다.

그는 나와는 같은 집에 살고 있었다. 처음에 이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었는데 사실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아파트지만 한 건물이니 같은 집임은 틀림없잖은가. 가까이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워서 더 친해지고 싶었었는데 한 학기의 반씩이나 그가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는 건강을 되찾게 되면 이제 뼈 통구이를 먹어야 할 거다. 원 그렇게 약해서야.



27 정진수


가느다란 몸매에 키만 멀쑥하게 자랐다. 우리들 중에서 여자로서는 제일 컸다. 하얀 얼굴에 입술이 두툼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말수가 아주 적었다. 그는 우리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으려 했었는데 이 때문에 짝지를 바꾸어야 할 때에는 조금 어려움을 겪었었다.

우리들은 8주일 동안 지낸 뒤 짝지를 바꾸었다. 바꾼다고 의무적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바꿀 생각이 있는 사람들만 바꾸는 것이었다. 다만 내가 될 수 있는 대로 새로운 짝지와 앉아 여러 사람들을 사귀어 보라고 권한 때문인지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었다. 특별히 문제가 있어 내가 강제로 정해 주는 몇 사람을 빼면 모두 자기 희망대로 앉는 것이었다. 문제는 남자와 여자가 모두 홀수이기 때문에 생겼다. 마지막에 가면 꼭 한 팀은 남자와 여자가 남게 되는데 그때의 여자는 거의 항상 정진수였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그랬지만 자꾸 그럴 수가 없어서 나중에는 짝지 정하는 문제로 내가 땀을 뺐었다.

그 자신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와 잘 친하려 들지 않는 것 같았다. 도시락도 그는 언제나 혼자서 먹었다. 그래서 내가 종종 마주 앉았는데 함께 먹으면서 그와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아마 그가 우리들 중에서는 나와 제일 이야기를 많이 했을 것이다.

그는 가슴에 큰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무엇 때문에 생겼는지는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가 자라오면서 그를 모질게 부대끼게 한 나이 많은 사람들의 탓일거라는 의심은 지울 수가 없다.

아무튼, 이제 그는 모든 걸 떨쳐버리고 밝은 햇빛 아래로 나서야 할 거다. 친구들과 손잡고 뛰어야 할 거다. 우리들을 위해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으니.



28 김태희


“선생님!”

어느 날 그는 종례를 마치고 책가방을 둘러맨 채 내 앞에 와서 정색을 하며 바라보았다.

“왜?”

얼떨결에 나도 긴장해졌다. 잠깐 그러고 섰더니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안녕히 계세요’라는 말과 함께 머리를 꾸벅 숙였다. 뒤로 묶은 머리꼬랑지가 내 얼굴을 간지렵혔다. 그는 그 뒤로도 그런 식의 인사를 몇 번 더 했다.

짜아식, 싱겁긴.


그는 전북 장수에서 자랐다. 훤칠하게 큰 키에 주근깨가 몇 개 찍힌 통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의 고향 말씨를 하고 있었는데 듣기에 좋았다. 우리들이야 이 우락부락한 경상도 말씨 말고는 죄다 한 가지로 들리기 예사라서 나도 그가 처음에는 서울 근처에서 온 줄 알았었다. 어쩌다 우연히 장수 이야기가 나와서 그가 반색을 하였던 것이다. 나는 두메 산골인 그 곳을 몇 번 지나쳐 가기만 했을 뿐 별다른 인연은 없지만 눈으로 보이는 그곳의 순박함을 좋아하고 있었기에 태희 그도 그와 겹쳐 보이는지도 몰랐다.

그는 늘 명랑했다. 그리고 몸집 만큼이나 마음이 넓어서 남자 친구들의 짓궂은 장난도 잘 받아 주었다. 수정이와는 창원KBS-TV 방송국에 노래 부르려 가기도 하고 짝궁으로 한 해를 거의 넘겼다. 다른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어쩐지 둘이서만 서로 붙어 지냈다.

가끔 너털웃음 소리를 내던 그는 몸과 마음이 큰 사람이었다.

 


29 백선미


교실에서 너무 말이 없이 지냈다. 제 친구들 하고는 어떻게 지내는지 눈여겨 봐도 내내 그랬었다. 유월 어느 날 한 번은 제 짝지 박해숙과  친구들 앞에 불려 나와 한참 훈련을 받았다. 목소리 크게 내는 훈련을.

그러나 그게 제대로 잘 되지를 않았다. 아마 전생에 말소리 크게 내지 못할 무슨 업보라도 지었는지.

답답해서 이렇게 말했다.

‘해숙이와 선미는 오늘부터 아무리 떠들어도 벌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2학기 들어서,

그는 교육방송 녹화를 맡았다. 텔레비젼 보는 거야 다들 밥먹기보다 좋아들 했지만 막상 자기가 그런거 하려니 싫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이 착하디 착한 선미가 선뜻 자기가 해 주겠다고 손을 들었었다. 그리고는 내가 오히려 잊어버렸어도 그는 부지런히 녹화해 와서 우리들은 그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좀 검은 얼굴에 돗수 높은 안경을 썼다. 그는 말이 없는 대신 자기가 맡은 일은 아주 열심히 하였다. 자기 분단이 청소할 차례가 되면 그가 반 이상을 하는 것 같았다. 그가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빈둥거리는 것 같아서 그를 청소하지 못하게 했는데 그래도 그는 들은 척도 않았다.

언젠가 한번 그가 큰 소리로 떠드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



30 한경아


그는 매우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있다. 우리들 모두가 어느 정도 그렇기는 하지만 그의 두 눈은 더 한층 깊고 그윽하다. 그리고 크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어딘지 까닭모를 수심이 서려 있다. 그는 왜 그 별빛 같은 눈에다 그런 기운을 내비칠까.

그는 그러함으로 우리들에게 고요함을 쏟아 놓는다. 서늘함을 쏟아 놓는다. 그리고 어려움을 쏟아 놓는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인상지어진 경아의 얼굴은 찬바람이 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그 자신도 깨닫고 있는 듯 하다.


마음  5. 14.


...... .

그렇다. 나는 하나도 잘하는 것 없는 보잘 것 없는 아이다. 성격이라도 활발해야 할 것을 활발하지도 못하는 성격!

나는 뭐 이런 성격 갖고 싶어서 태어났나.

나도 내 성격을 고치려고 정말 많은 노력을 하였다. 하지만 원래 그런 것을 어떡해. 그리고 나는 뭐 매일 가만히 있고 아무 말 하지 않고 표정 없는 돌인가?

나도 싸움도 할 줄 알고, 웃을 수도 있고, 움직일 줄도 아는 사람이다.

정말 내가 밉다.

나보고 착하다, 말 잘 듣는다. 하는 칭찬도 듣기 싫다.

차라리 이 세상에 괜히 태어난 것 같다. 진정 참다운 마음은 무엇일까?

...... .


오늘은 두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싶다.


경아는 우리들 또래에서 한참을 앞질러 가고 있는 사람이다. 우선 학교 공부를 썩 잘한다. 말도 조리있게 하고 여러 사람 앞에서도 전혀 흔들림이 없다. 자기 주변은 언제나 반듯하게 챙겨 다듬고 남에게 싫은 일은 조금치도 안한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단다. 밉단다. 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경아가 그 자신을 생각하는 것은 완전함이다. 뭐든 빈틈이 없어야 아마 그는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면 오죽 좋으랴. 그러나 사람은 그럴 수가 없다. 정말이지 그래서도 안된다. 완전한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귀신이다. 우리들 사람이 어찌 귀신을 좋아한단 말인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사람다움이다. 사람이란 때론 실수도 하고 허술한 구석이 있어야 그 사람에게서 인간미를 느낄 수가 있는 법이다.

경아야.


31 이수정


따뜻한 봄날에 수정이는 몇 번 내 앞에 와서 몸을 비비꼬며 말꼬리를 흐렸다.

“조퇴하고 싶은데예... .”

그런 놈들 제대로 대해 주지 않음을 그는 아는가 모르는가.

들은 척도 않고 괜스레 딴전 피워 수정이는 쩔쩔매었다.

“창원 KBS에... .”

‘아항, 동요 부르기 대회에 가겠다는 것이었구나.’

태희가 보호자 겸 들러리를 서서 들락거리더니 예심 통과해 나중에는 텔레비젼에까지 얼굴이 나왔다. 아쉽게도 입선은 못했지만.

그 일이 알려지고 나서 그들은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우리 앞에 나섰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와 태희가 부르는 이중창에 한참 넋을 뺐더랬다.

2학기 가을 소풍을 지난 며칠 뒤, 하루는 연락도 없이 결석을 했었는데 그 다음날 나온 그의 얼굴은 옻이 올라 붉어있었다. 그로 해서 안 그래도 부끄럼 잘 타는 그는 정말로 얼굴을 제대로 들지 못하고 한 열흘을 거북하게 보냈다.

그러다 학예회에 즈음하여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이때까지의 그의 인상을 바꾸어 버릴 만한 일을 겪게 되었다. 늘상 비비꼬는 일을 취미로 알았던 때문일까. 박기남이가 스스로 자원해서 나가게 되어 있던 독창이 담당선생님의 거부로 벽에 부딪쳐 있었던 때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부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는 막무가내로 안된단다. 그 특유의 몸틀림을 곁들여 내 속을 어지간히 썩혔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그와 나는 서로 틀어져 있었다. 그는 그대로 내게 무슨 불만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러는 그가 그때는 좀 미워보였다.

손가락 깨물며 뒤트는 그 몸놀림은 언제쯤 고쳐질까.



32 박영주


엄마를 도와 기분이 좋아요  4. 20. 수 맑음


오늘 엄마의 식당 일을 도왔다.

칭찬도 듣고 기분도 좋았다. 너무나 많이 하니 어깨가 아팠다. 너무 힘들었다. 엄마가 나에게 약을 사주셨다. 고마웠다.

오늘은 기분이 좋아 날아갈 것 같았다. 나는 오늘 이때까지 엄마와 아빠가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 지 오늘 느꼈다.


그의 집에서는 식당일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가 생일이었을 때 초대하는 이들에게 불고기파티를 열어 줄 것이라는 소문이 쫙 돌아 입맛을 다시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그는 중간쯤 되는 키에 통통한 몸집을 가졌고 목소리도 체구에 걸맞게 굵직했다. 별로 활발한 성격이 아니어서 조용했는데 제 친한 사람들과 지낼 때 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책임감이 강해서 맡은 일은 잘하는 편이었으나 제 스스로 하는 일은 어쩐지 자신이 없어 보였다.

그는 마음씨 착하고 부지런했으나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저 아무 탈없이 하루하루를 수월스레 지내면 그뿐이라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는 겁이 많은 편이었는데 그런 사람들의 대부분은 변화를 아주 싫어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영주가 좀 더 용기를 갖고 씩씩하게 생활했으면 하는 마음을 가져 본다.


33 서지연


책  4.  22. 


오늘 언니가 사다 준 책을 읽었다.

제목은 앗! 귀신이라는 책인대 나는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읽었는데 반 정도 읽으니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책을 덮었다.

나는 오늘 자려면 몇 번이나 일어나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무서운 책을 읽으면 잠을 못자기 때문이다. 나는 결심을 했다. 이제부터는 무서운 책을 손도 대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은 각자 집에 있는 책을 가져 와 서로 돌려가며 읽었다. 대개 한달 정도씩 교실에 두고 읽었는데 우리들 중 아마 지연이 그가 가장 많이 읽었을 것이다. 그는 책을 끼고 살았다. 그런데 막상 지연이 그는 집에서 가져 온다는 게 이런 귀신이야기 같은 것이었다.

그래도 그가 그처럼 책하고 친한게 대견해서 아뭇소리 않았지만 아니할 말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그런 책들을 나는 속으로 얼마나 미워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는 책을 많이 읽고 항상 연주랑 붙어살았다. 나중 알고 보니 그 둘은 집이 바로 이웃이었다. 크지 않는 키에 얼굴은 약간 갸름한 편이었다.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머리핀을 찔러 항상 단정해 보였다.

그는 별로 부지런한 편은 아니었다. 자기 할 일은 제법 하고 있었지만 그 뿐이었고 일을 찾아서 하는 따위는 잘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의 느릿느릿한 움직임에 내가 짜증을 더러 냈었다.

지연이는 책하고 친한 사람이었다. 나중 어느 날 그가 좋아했던 책들로부터 그는 크나큰 선물을 받을 것임에 틀림없다.

 

 

34 정나리


운영위원  3. 13. 토. 맑음


두근두근

투표시간


‘정나리입니다’


그런데

후보자에도 못 올랐다니.


실망 큰 하루이다.


나리는 성격이 매우 밝고 활발해서 맑게 개인 하늘과 같았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하려고 했었다.

그는 여러 사람 앞에 나서서도 전혀 달라짐이 없었다. 학급회에서 그가 보여준 사회 솜씨는 지금 당장 그를 전교 어린이회의 진행을 맡겨도 아무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런 그도 1학기 학급위원 선거에서는 후보에도 추천이 되지 않았었다.

그의 오빠는 정다운이다. 작년에 나와 함께 1년을 살았기 때문에 잘 안다. 남매끼리 예쁜 이름들을 가졌었는데 그의 부모님의 마음 씀씀이가 돋보였다.

비교적 자그마한 키에 동그란 얼굴을 가졌었는데 웃는 모습이 참 예뻤다. 그는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는데 따라서 그는 언제나 예쁜 셈이었다.

그러나 그가 가진 의욕은 가끔 지나칠 때가 있어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 같았다. 그는 그를 아끼는 사람들의 눈빛도 가끔씩 들여다 보는 슬기를 아울러 가졌으면 참 좋겠다.

 

 

35 박정영


큰 키에 갸름한 얼굴, 거기에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학년초에는 무척 말이 없어 답답했었는데 나중에는 제법 입을 열고 지냈다. 교과서 공부를 잘하고 글도 잘 썼다. 게다가 여학생 중에서는 운동을 제일 잘 해서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그는 그러는 자기를 잘 모르는 듯 늘 주위의 눈길들에는 무관심했다. 그리고 언제나 박해숙과 붙어 다녔는데 그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사귀는 기회를 많이 잃었었다. 우리들은 한해동안 예닐곱 번 정도 짝지들을 바꾸었지만 그들은 거의 짝지를 바꾸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가진 능력에 비해서 너무 자신을 낮추었다. 겸손이란 좋은 것이지만 항상 그래서는 곤란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번거로움을 싫어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불안이 그를 멈칫거리게 하는 것 같았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씩은 변화를 싫어하는 마음이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자기에게 빠져서 그대로 눌러 앉을 수는 없다. 그건 뒤쳐짐를 뜻한다. 그동안에 다른 사람들은 저만치 앞서 달려 가 버리기 때문이다.

팔을 걷고 용감히 달려 나가자. 세상 사람들은 그걸 ‘발전’이라고 하더라.



36 권연주

 

여학생 중에서 제일 작은 사람이었다. 그의 첫 인상은 동글동글하다는 것이었다. 얼굴도 눈도 그리고 입도 그랬다. 그래서 약간 검은 듯한 낯빛과 어울려 야무진 느낌을 주었다. 맡은 일 군소리 없이 하고 남의 눈에 벗어나는 일 없이 잘 지냈다.

그는 쌍둥이였는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얼마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쌍둥이의 다른 사람은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5반의 권병구라는 사람이 그의 쌍둥이 동생이었는데 우리 반에도 몇 번 왔었다. 이야기 듣기로는 남녀 쌍둥이들은 대개 사이가 좋지 않다고 했었는데 그들은 그와 정반대였다. 그들 남매는 어찌나 사이가 좋은지 참으로 보기가 좋았다. 그는 우리들 중에서 시끄럽지 않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항상 그렇지만은 않았다.

어쩌다 나는 그와 ‘동!’이라는 놀이를 시작했었는데 항상 내가 그 ‘동!’에 걸려서 꼼짝을 못했다. 한번은 운동장에서 그가 나를 먼저 보고 말았었다. 그는 아주 신이 나서 ‘동!’하고 소리쳤다. 나는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나는 차를 몰고 가던 중이었기 때문에 내 차도 할 수 없이 함께 섰다. 이래저래 내가 더 손해인 것 같아 그 놀이 그만두자고 해도 그는 들어주지 않았었다. 억지긴 하지만 손도장까지 찍혀 약속한 터여서 나혼자 그만 둘 수도 없었다.

그뒤 그로부터 일주일 가량을 사정사정해서 겨우 그 ‘동!’에서 나는 해방되었다.



37 박정은


박정은의 아빠는 야구심판이시다. 그냥 동네 야구나 직장의 야구에서가 아니라 우리들이 말로만 듣는 그 프로야구에서 심판을 보신다. 1학기말 체육 시험에 이런 문제가 나왔었다.


‘야구에서 스트라이크가 되는 범위를 쓰시오.’

여학생들이야 체육하고는 별로 친하지 않으니 이 문제가 어려웠나 보았다. 그도 마찬가지였었는데 아마 한참을 끙끙대었을 것이다. 그리곤 끝내 답을 쓰지 못하고 말았는데 그 자리에는 조그맣고 희미하게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아빠, 도와주세요!’


그의 조그만 얼굴에는 온통 안경이 뒤덮고 있어 보이는 것은 안경뿐이었다. 가끔 드러나는 맨 얼굴의 그 생경한 모습은 꼭 달걀을 생각키웠다. 그는 밝고 가녀린 마음을 가졌다. 친구들을 사랑하고 동생을 사랑하였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게서도 생명을 느끼는 것 같았다. 목소리도 그런 그의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가느다란 샘물이었다.


8. 1. 일


오늘은 언니와 녹음기를 틀어놓고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그런데 언니 목소리는 실제 목소리 같은데 나의 목소리는 여우 목소리 같다고 하니까 언니는 언니의 목소리가 더 돼지 목따는 소리 같다고 하는 것이었다.

하여튼 아무 말을 하거나 노래, 장래 희망등을 말하였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목소리를 바꾸어도 목소리가 여우 목소리 그대로라서 무척 화가 났다.


그는 자신이 교과서 공부 뒤지는 것에 매우 속상해 하고 있었는데 그건 다른 사람들도 대개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게 별로 애태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부야 언제든 마음먹고 노력하면 되는 일이지만 정은이가 가지고 있는 고운 마음은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38 김은화


살이 많이 올라 키에 비해 조금 무거운 사람이었다. 가슴도 함께 넓어 그를 놀리는 사람들에게 별로 대꾸도 않았었다.

‘그래, 나 뚱뚱하다. 어쩔래?’

그의 표정은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를 2년 전에 알았었는데 그 때는 그의 체격이 지금 같지 않고 훨씬 말랐었다. 그의 오빠가 나와 함께 살고 있었을 때 오빠를 찾아왔던 그는 아주 조그맣고 귀여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움직임이 늦었다. 아마 그건 버릇이라는 편이 더 옳을 것 같은데 자리에서 일어서는 동작만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그가 맡은 일은 열심히 했었고 오히려 느긋한 여유가 함께 있어 좋았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었으며 그 때문에 글도 곧잘 썼다.

나는 은화 그가 좀 더 자기 생활에 욕심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좋다는 이야기 정도에 만족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39 정희정


그는 매우 적극적이었다. 자기가 할 수 있겠다 싶은 일들은 스스로 청해서 했다. 수업시간에 하는 발표 횟수도 여학생들 중에서는 많은 편이었다. 그의 이러한 점은 여러 사람들의 부러움과 함께 약간의 시샘을 받았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의 게으름은 생각하지 않고 남의 부지런함을 설친다며 깎아 내리고 싶어들 한다.

그에게는 형제가 없었다. 그의 집에서 나이 적은 사람은 그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외롭게 자란 그런 흔적이 별로 없었다. 그는 보통 사람들보다 명랑한 편이었고 자기의 고집만 내세우지도 않았고 또 남을 이해할 줄도 알았다. 그의 그러한 점은 모두 그의 부모님 덕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희정이의 부모님께서는 생각이 매우 건실해 보이셨고 그에게 자상스럽다는 느낌이었다.

그는 나를 몇번이나 자기네 가게에 데려 가려 했다. 그건 그가 심심해서가 아니라 부모님을 자랑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훌륭한 딸이기도 했던 것이다.



40 최혜성


그는 말수가 아주 적었다. 평소 그가 친구들과 재재거리는 것을 본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도 별로 사귀지 않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여러 사람 앞에서 하는 발표는 너무 잘했다. 목소리도 분명하고 조리있었다. 그는 말을 할 줄 몰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할 이야기들을 참고 있는 듯 했다.

그러한 그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를 걸어도 그는 긴 이야기는 좀처럼 하지 않았다. 물어보는 말도 짤막짤막하게 마지못해 대답했다. 답답해진 나는 어느 날 그를 집적거렸었다. 좀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던 그는 내가 귀찮아졌나 보았다. 벌컥 화를 내며 뛰쳐나가버렸다. 나도 슬며시 화가 났다. 제가 말 않으면 대순가. 머 그래 보라지. 그리고는 서로가 말을 끊었다. 그게 제법 며칠 갔을거다. 그러다 언제부터 인지 우리는 다시 좋아졌다. 그는 내가 하는 말에 하나하나 대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나의 말에 웃고 있음을 보고 예전의 그로 되돌아 갔음을 확인했다. 그렇게만 해도 좋았다.

그는 책을 많이 읽었다. 그가 가져 온 책들은 내 마음에도 들었었다. 다른 사람들이 귀신이야기에 가슴을 졸이고 유치한 코메디에 히히덕거릴 때도 그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었다.

그는 자기의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아주 바람직스러운 태도였지만 다른 사람들이 살아 가는 모습도 살펴보며 가는 여유를 가졌으면 했다.



41 강정은


그의 키는 큰 편이었다. 통통한 얼굴은 언제나 발그레 했으며 안경을 끼었었다. 그러고도 잘 보이지 않는지 턱을 내밀고 바라볼 때가 많았다. 그는 말이 적은 편이었고 친구도 많지 않았었다. 그렇다고 그가 뒤로 물러나 제 혼자 지낸 것은 아니었다. 여럿이 어울려 함께 놀기도 했다.

그는 제 할일은 스스로 잘했고 부지런했다. 일을 남에게 미루거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려 눈을 흘기는 일도 없었다. 다만 마음이 모질지 못해서 남의 일까지 덤으로 떠 맡는 따위는 좋아 보이지 않았었다. 자기의 생각을 분명히 하고 지내는 일은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일기를 아주 특징있게 썼다.

꼭 필요한 말만 쓴 그의 글은 노래였다.


관찰한 개미  4. 4. 일


아니 이 개미가,

나는 개미를 꼭 밟아버렸다.

밟고 나니 개미떼들을 발견했다.

혹시 밟은 개미를  찾아 왔나

그런 일은 절대 없어.

나는 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혹시 개미를 죽여서.

개미 관찰이나 해 보자.

화단에 핀 꽃들 사이로 지나가면서 따라 가는 개미떼들이었다.

정은아,

왜 그래.

개미 관찰하니.

말이 없네.

나는 내 모습이 죽은 개미처럼 하기 위해서 였고 다음 부터는 개미를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이기도 하였다.



43 김미현


보통 키에 얼굴이 좀 검은 편이었고 살이 쪘었다. 머리가 비교적 커서 그와 같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뚱뚱해 보였다.

그는 그의 이러한 외모에 대해 매우 속상해 하고 있었는데 그건 아무 쓸데없는 관심이었다. 왜냐하면 살아가는데 그 사람의 바깥 생김새가 주는 영향이란 아주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미현이의 그런 모습이란 아무 흠잡을 데 없는 보통 사람의 얼굴이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기의 얼굴에 대해 얼마간씩의 열등감을 가지고 살기 마련이다. 나는 왜 코가 이렇게 납작할까. 눈이 더 컸으면 좋을 텐데. 남들과 다른 아주 작은 이러한 차이 때문에 사람들은 고민에 빠진다. 이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며 한편으로는 낭비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달라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만의 아름다움이 있게 되는 법이다. 그걸 우리들은 개성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의 됨됨이다.

그는 글을 잘 썼다. 그가 쓴 글들은 그의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었는에 이것은 평소 그가 부지런히 책을 읽은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는 많이 생각하고 좀 더 명랑해져서 마음의 아름다움을 가꾸는데 더 관심을 두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44 이동희


그는 조금 작지만 균형잡힌 작은 몸집을 가졌다. 뺨에는 보통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예쁜 보조개가 있었다. 눈꺼풀이 두텁고 입술이 얇다랬다. 오랫동안 머리칼을 길게 기르고 다녔는데 어느 날 그만 싹둑 자르고 나타났다.

머리가 굉장히 좋은데도 그는 공부쪽으로는 그걸 잘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아주 잘 해질텐데.

언제나 그의 관심은 자기와 몇몇 가까운 사람들에 머물렀고 남들의 일에는 끼여들지 않았었다. 그렇다고 그가 능력이 모자란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오히려 그는 당당했다.

2학기에 했던 학예발표회에서 그는 춘향이 친구 향단이가 되어 무대에 섰었다. 그만이 아니라 전체가 딱딱해져 있어서 자연스럽지는 않았지만 여러 사람들의 눈길을 받으며 연기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모두들 그런게 하고 싶기는 하지만 선뜻 나서지 못할 때 그는 용감히 손을 들었던 것이다.

그는 작은 몸집에 큰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45 박해숙


동글납작한 얼굴에 키는 중간쯤 되었다. 머리칼을 뒤로 묶어 다녔는데 몇번인가 그걸 풀어서 파마를 한 적이 있은 것 같다.

그는 말소리가 아주 작았다. 말수가 적은 것이 아니라 말의 크기가 작았던 것이었다. 게다가 일어서서 발표를 해야 할 때는 아예 그 작은 말소리마저도 잘 내지를 않으려 했다. 그런데 제 짝지 박정영이와는 틈만 나면 소곤거렸다. 그래서 그렇게 작은 말소리를 가진 그가 도리어 수업시간에 떠든다고 자주 벌을 썼던 것이다.

웃을 때는 소리도 없이 입을 크게 벌리지 않으려 애를 쓰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무표정할 때가 많았지만 웃는 그의 모습은 아주 맑고 깨끗했었다. 그의 티없는 마음이 배어 내비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가 좀더 여러 사람들과 사귀고 다른 사람들의 사는 모습도 눈여겨 보아가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씩씩하여 졌으면 좋겠다.



46 홍정현


10월 15일 맑음


소풍을 갔었다. 점심시간, 둘러앉아 재재거리며 한창 먹다보니 김치가 먹고 싶었다. 그런데 소풍이라 그런지 김치를 싸온 사람이 아주 드물었다.

옆에 앉은 홍정현의 도시락에 깍두기가 있었다. 먹어도 되느냤더니 안된단다. 한 개만 집어 먹재도 자기가 아직 밥을 다 먹지 않았단다. 한참을 졸라도 그랬다.

그러고나서 얼마 뒤,

“선생님, 이거 드세요.”

그가 반찬통을 내밀었다. 깍두기 한 개를 달랑 남겼다. 나는 그 귀한 깍두기를 냉큼 집었다.

가을 햇살에 실려 웃음이 길게 흘렀다. 단풍잎이 더욱 빨갛게 물들었다.


그는 예사 키에 단발머리를 했었다. 별로 자기의 감정을 나타내지 않았으나 상냥하고 친절했다. 활발한 편이 아니었고 남의 일에 신경 쓰는 일도 적었다. 그러나 그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는 따스해서 누구나 그를 가까이 하려 했었다. 그렇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자기의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에게도 그랬었다. 그의 가슴은 토끼가 세수하려다 그만 둔 깊은 산속의 옹달샘이었다. 전혀 때묻지 않은 그의 마음은 그 샘에서 방울져 떨어지는 맑은 물이었다.

그러나 그도 새로운 것에 주저하였고 낯선 것에 겁을 내었었다. 혼자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였다.

나를 대신 살아 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음을 그는 아는가 모르는가.



47 강대영


의령에서 전학해 왔었다. 비교적 큰 키에 얼굴에는 주근깨가 좀 찍혀 있었다.

그가 우리들과 어느 정도 낯이 익자 그는 우리들에게 끼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말과 행동은 우리들과 약간 달랐다. 얼핏 귓가를 스치는 그의 말투는 거친 편이었고 세련되어 있지 못했었다. 학년을 마치는 이제 그의 그런 점은 거의 고쳐졌지만 처음 한동안 우리들의 신경을 많이 돋구었었다.

그의 가슴에는 우리들이 알 수 없는 뭔가가 걸려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나에게 거리를 두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처음보다 많이 가까워지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들의 사이는 멀게 느껴진다. 그가 엄마 아빠를 떠나 멀리 이곳에 와서 고향을 떠난 외로움과는 또 다른 쓸쓸함을 느끼고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도 친구들과 잘 지냈고 여러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 하려고 애를 썼었다.

뭐니뭐니 해도 그가 우리들에게 오래 잊혀지지 않게 된 것은 바로 가장 큰 사건 - 이정민의 다리를 다치게 한 일을 했던 때문이었다. 아무 것도 아닌 조그마한 장난이 얼마나 큰 후회를 낳게 되는지를 아마 그는 잘 깨달았을 것이다.

그의 도회지 생활 1년은 곡절도 많았었다.



48 황성민


두 번째로 전학해 온 사람이었다. 그의 전 학교는 무학국민학교인데 바로 우리 이웃이었다.

안경을 쓰고 키는 작은 편이었다. 둥근 얼굴에 약간 피부가 검었는데 입술이 두터웠다. 그의 말투는 짧은 혀를 가진 듯한 소리를 내어서 처음 몇 번은 교실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마음씨가 고와서 친구들과 잘 어울렸으며 맡은 일에 열심이었다. 그는 자기 일에 비교적 노력이 많았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발표도 자주 신청했다. 공부를 썩 잘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이러한 점은 다른 사람들이 본받을 만 했다. 머지 않아 그는 다른 사람들 보다 몇 발짝 앞서서 가게 될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49 엄혜리


마지막으로 전학해 온 사람이었다.

키는 보통이었으며 얼굴이 좀 긴편이었다. 곱슬머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의 섬세해 보이는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히려 대범하게 보아 넘겼었다. 그는 밝고 명랑했었다. 보통 때는 별로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해야 할 말은 거침없이 잘 했다. 그래서 짓궂은 남학생들과 말씨름도 종종 있었다.

그는 맡은 일을 열심히 했고 부지런했다. 친구들과는 잘 지내는 편이었지만 그가 가까이 하는 친구의 수가 많지 않았다. 홍정현과 거의 1년 내내 붙어 다녔다. 그 둘의 어떤 점이 서로를 그처럼 가까이 했는지 모르지만 여러 사람과 사귀는 일도 중요하다는 내 말이 그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운동을 남달리 싫어했다. 몸이 약해 그러기도 했겠지만 어쨌든 체육시간이 그에게는 매우 싫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체육과목의 성적은 다른 과목들과는 엄청나게 많이 달랐었다. 나는 그의 재미있는 성격이 좋아 자주 말장난을 걸었었다. 그는 그때마다 눈을 흘겼는데 그래도 나는 그게 아무렇지도 않았었다.

그는 깔끔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정현숙


그는 담임으로서 우리들의 대장이었다.

그래서 그는 뭐든 거의 제 마음대로 했다. 제가 하기 싫다고 책걸이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매도 때리고 야단도 많이 쳤다. 우스운 것은 대머리가 다됐으면서도 항상 자기를 잘생겼다고 으시대는 것이었다.

 

 

XE Login

";wcs_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