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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마산 완월초등학교 5학년 4반
1991년 3월 1일 - 1992년 2월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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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억하기
우리들은,
1991년 3월에 마산 완월국민학교 본관 건물의 3층 동쪽에서 두 번째 교실에서 제 5학년 4반으로 함께 지냈다
맨 처음 남학생 25명과 여학생 22명 이렇게 47명이었는데 이소영이란 여학생이 창원시로 전학을 가고 학년 말까지 4사람이 새로 와서 나중에 5학년을 마칠 때에는 모두 50명이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정현숙이었다
얼마간의 세월이 지나고 나서 내가 국민학교에 다녔던 때, 그리고 그중에서 5학년 때가 생각날 적에 이 글을 읽고 그 때 그 친구들의 기억을 되살리는데 쓰여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적어 본다 순전히 ‘나’의 눈으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이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그기에다 마음에 들라고 일부러 못한 것을 빼버린다든지 하지 않았으므로 기분이 나쁠지라도 ‘나를 이렇게도 보는 눈이 있구나’ 하고 생각해 주었으면 고맙겠다
손기수 1번
키는 중간 쯤 되고 상당히 잘 생겼다고들 한다. 언제나 머리며 옷 매무새가 여자애들 못지 않게 매끈하였다. 특히 웃을라치면 참 보기 좋았다. 운동을 좋아하고 또 잘 해서 틈만 있으면 뛰었다. 공부 시작할 때 땀을 뻘뻘 흘리면서 들어와 선생님 눈치보며 야단맞을까봐 가슴을 졸이는 것 같았다. 머리는 좋은 모양인데 공부하는데에는 별 취미가 없는지 공부를 억지로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한 해동안 내내 황지훈이하고 붙어다녔는데 그건 별로 보기에 좋지 않았다. 지훈이도 좋은 친구이지만 어쩐지 지훈이가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학년이 바뀌면 또 다시 다른 친구가 생기겠지만.....
조석래 2번
둥글넓적한 얼굴에 주근깨가 몇 개 찍힌 것이 인상적이다. 언제나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다녀 얼굴은 항상 불그레한데다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키는 보통인데 상당히 튼튼한 인상을 준다. 좀 어른스러운 점이 많아 믿음직한데가 많다. 평소에는 별로 공부는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시험치면 성적은 좋았다. 아마 무지무지하게 머리가 좋은지도 모를 일이다. 실과 시간에 국기함 만들기를 할 때 다른 애들은 거의 문방구점에서 사왔지만 집에서 가져온 걸로 뚝딱거리는 걸 보고 참 대견한 생각이 들었다.
김수열 3번
학년 말 이야기 시간에도 한 말이지만 내가 참 미워했던 녀석 중의 하나이다. 생긴 것은 매끈한 녀석이 공부도 잘 하고 과학 쪽에는 다른 누구보다 아는 것이 많은 데 하는 짓은 어찌 그리 마음에 들지않은 것이 많든지 몰라. 1,2학기 두 번 다 학급위원에 뽑혔는데도 뽑아 준 녀석들도 눈이 삐었지, 뭘 시킬라치면 애가 타서 못살지경이었다. 그래도 마음씨는 고와서 싸우고 남을 못살게 구는 일이란 없었다. 어떨 땐 까불어대는 것이 귀엽기도 하고 내 발등에 걸터앉아 장난을 걸라치면 받아주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또 한 가지 특별한 것은 다른 어떤 남학생들도 감히 그러지 못하는 것 - 여학생들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 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는 것이다. 아마 이래서 내가 수열이를 미워하면서도 좋은 이유일지도 모른다. 봄소풍을 무학산 꼭대기로 정하고 학교를 출발하는데 뭔가를 주렁주렁 들고 있는 녀석을 보았더니, 아 글쎄 그게 장난감 자동차 셋트가 아닌가. 아무튼 내 말대로 가져가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안그랬으면 그날 수열이는 혼구멍이 났을 것이다. 등산이 어디 장난인가. 어쨌던 재미있는 녀석이다.
윤민근 4번
민근이를 생각하면 안쓰러움이 든다. 큰 키에 생긴 것도 그만하면 됐고 마음 씀씀이는 참 곱다. 운동에도 남에 뒤질세라 열심이다. 공부는 썩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잘 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왜 그렇게 부끄럼은 많은지...... . 교실에서 앞에 나와 이야기를 할 때면 도통 어쩔줄을 모른다. 빨개진 얼굴로 눈은 어디에다 둘지 몰라 쩔쩔매고 죄없는 한 쪽 다리만 앞뒤로 흔들어 댄다. 학년 말 쯤 되었을 때는 많이 나아졌지만 그것만 고쳐 보면 참 생김새와 같이 시원스런 사람이 될 것도 같은데 어쩔는지.
이승훈 5번
‘남강 선생’으로 통했다. 그건 물론 교과서의 남강 이승훈 선생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실제 남강 선생님이 보셨다면 좀 실망하실 것 같다. 말이 워낙 없어 사람이 묵직하게 무게를 잡는 것 까지는 괜찮은데 그게 좀 지나치다 싶은 것이다. 공부시간까지 자기 혼자 제 마음에 드는 책을 꺼내 읽어댄다. 뭔지 모르지. 도를 닦는 걸까. 몸집은 뚱뚱한 편인데다 허연 얼굴에 눈꺼풀이 두꺼워 폼이 제법 으젓하다. 나중 어른이 되면 틀림없이 큰 뭔가를 이룰만한 느낌을 준다.
최용환 6번
5월 어린이날에 우리 반에서 ‘착한 어린이’로 뽑혀 상을 받았다. 우리 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을 들어 추천을 해 주었다. 원인은 잘 모르지만 공부쪽으로는 머리가 트이질 못해서 유감스럽게도 공부는 잘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걸 자신이 없어한다. 사실은 그럴 필요가 조금도 없는데도. 그렇지만 남에게 싫은 일을 하지 않고 자기가 맡은 일은 열심히 하니까 다들 좋아한다. 좀더 자신을 갖고 친구들과 열심히 어울려 지냈으면 참 좋겠다 싶다. 용환이는 우리 모두가 아마 제일 오래 기억할 사람일 것이다.
정승호 7번
자기 집에서는 가발 가게를 하고 있다고 한다. 나도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몇 번 이야기를 나누었었는데 나의 대머리에 관해서 제나름대로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자기 아버지에게 말해서 내 머리에 적당한 가발을 맞출 수 있다는 눈치였다. 나는 순전히 농담으로 재미삼아 하는 이야기를 승호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나는 내 머리카락 줄어드는 일에 대해서는 이미 포기한지 오래이기 때문에 그 이야기는 그기에서 그친 셈이다. 승호는 승호 자신의 취미가 그래서 그런지 언제나 검거나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고 다니곤 했다. 안그래도 말을 적게하고 몸이 굼뜬데 옷까지 어두우니 교실에서 더 눈에 덜 띄였다. 승호는 노래를 아주 잘 부른다. 제 성격대로 마음내켜 노래부를 사람이 아니니 우리는 그의 노래를 한참 뒤에야 알았다. 그 노래 소리에 우리들은 놀랐고 또 끝난 뒤에는 누구랄 것도 없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승호의 의젓한 태도와 착한 마음은 아마 누구에게서나 아낌을 받을 것이다.
김진일 8번
한 마디로 문제투성이였다. 일년동안 내내 진일이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아마 이 해에 빠진 내 머리카락의 적어도 50퍼센트 이상은 진일이 탓일거다. 처음 만나서 채 낯이 익지 않아 서로 서먹서먹할 때 부터 진일이는 네 활개짓을 해댔다. 공부시간에는 바로 앉아 있는 법이 거의 없이 엉덩이는 항상 걸상 위 등받이에 반쯤 올라 걸쳐있고. 얌전히 있는 옆 사람을 들쑤셔서 함께 벌쓰게 하기 일쑤였다. 몸 놀림은 또 어찌 그리 잽싼지 쉬는 시간이 되었다 하면 학교를 서너 바퀴는 거뜬히 돌 정도였으니. 학년 초에 내가 ‘올해는 매를 들지 않아야지’한 결심을 바꾸어버리게 한 것도 진일이다. 하여튼 내가 몸살이 날 지경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그래도 싫지않은 구석도 있었다. 매를 때려 때린 나는 속으로 미안해서 부러 뚱해있는데 언제 맞았느냐는 듯이 얼굴을 들이 밀고 해해거릴 때는 참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진일이는 나중에 틀림없이 유명해질 소질이 다분히 있다. 무엇을 하던 남에게 지지 않고 잘해 낼 것이다. 공부가 무슨 대순가. 지금의 진일이가 그러하듯이.
이재권 9번
재권이는 영감이다. 속에 무슨 꿍꿍이가 들어있는지 통 그 속을 알 수 없다. 길쭉하고 광대뼈가 좀 불그러진 얼굴은 수염만 붙였다 하면 큰 키에 어우러져서 십년 수도하고 금방 하산하신 도인같은 느낌을 줄 것 같다. 게다가 좀 쉰듯한 걸쭉한 목소리는 재권이를 한층 더 개성있게 만든다. 재권이는 참 빠르다. 우리들 중에서 여학생 허정남과 더불어 제일 달리기를 잘한다. 학년초 육상대회에서 우리 반을 종합 3위에 올려 놓는데 재권이도 단단히 한 몫을 했다.
박정훈 10번
1학기 땐가 우리들은 국어시간에 정훈이 때문에 대단히 놀랐다. 시를 낭송하게 되었는데 감정을 넣어 폼을 잡는 모양이 하도 우스워 모두 자지러지게 웃었는데 정훈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낭송해 내려갔다. 나중에는 진지한 그 모습에 모두들 넋을 잃어 마치자마자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좀 과장된 낭송이었지만 그 대담한 용기가 대견했다. 그 뒤로는 시 낭송하면 정훈이를 바라 볼 만큼 그 날의 정훈이는 잘 해냈던 것이다. 정훈이는 일기도 잘 썼다. 글씨도 반듯한데다가 내용도 깔끔했다. 일기는 여학생들이 대체로 잘들 썼는데 정훈이는 일기 잘쓰는 몇 안되는 남학생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하얀 얼굴에 좀 구부정하게 걷는 정훈이는 평소 말이 별로 없지만 자기는 잘 웃지도 않고 남을 즐겁게 하는 유우머가 가득한 친구였다.
서영준 11번
뚱뚱한 몸집에 하얀 얼굴, 그기에 웃을라치면 사뭇 감겨버리는 가느다란 실눈, 그리고 좀 뛰었다 하면 비오듯 흘러내리는 땀방울 - 서 영준 하면 떠오르는 인상이다. 학급회 시간이면 열심히 토론에 참가하는 몇 안되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 그의 말은 대단히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또 순진하고 착하기로는 틀림없이 우리들 중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2학기에 들어 무슨 일이 있는지 공부하는 건 좀 뜸해졌지만 그런대로 잘하는 편인데 다만 그놈의 손이 어딘가 잘못됐는지 글씨가 영 엉망이다. 누군가 ‘이게 아라비아 글자냐?’라고 물어 볼 정도였다. 글씨가 우리에게 뭐 별로 크게 대수롭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로서도 영준이의 글씨는 보기에 좋지 않았다. 영준이는 착하고, 발표 잘하고, 뚱뚱하며 그리고 글씨가 별로인 사람이었다.
김동진 12번
1년 동안 우리 교실을 날고 기었던 몇몇 선수 가운데 랭킹 1,2위를 다투었던 유망주였다. 김진일은 몸집이 작아 유리하기나 했지만 불그레한 얼굴에 비교적 뚱뚱한 몸집의 동진이는 그 불리한 체격 조건을 갖고도 동서남북 사방을 누비고 다녔다. 조금만 더 날씬했었더라면 아마 공중을 훨훨 날았을 것이다. 홍길동이가 무색하였으리라. 금방 교실에서 보고 나왔는데 일이 있어 어딜 가다 보면 또 그 중간에서 만난다. 공부시간에는 제 구미에 맞아야 자세가 달라질까 보통 때는 옆 아니면 뒤로 돌아 앉는 것이 동진이의 바른 자세였다. 그런데 공부는 언제 하는 걸까. 하는 걸 보면 분명 성적은 뒤에서 세어야 빠를 건데도 남못잖으니. 아무튼 참 얄밉고, 내가 어쩌지 못하는 곤란한 녀석이었다. 나중에 크면 아마 주위 사람들도 동진이를 감당하기 벅차할 것이 틀림없다.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 - 그건 위대하다는 뜻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정도 13번
정도도 참 수수께끼에 싸인 친구이다. 산수 문제 풀어가는 것을 보노라면 분명 머리는 좋을 것 같은데 하는 짓은 고삐풀린 망아지 그대로이다. 말도 고함도 없이 뛰어 내닫고 쏘다니는 것은 어느 누구에 빠질세라 잘한다. 아마 쉬는 시간에 교실 앞문으로 뒷문으로 스무 바퀴쯤은 충분히 돌 것이다. 하도 정신이 없어서 한 동안은 금족령을 내렸었는데 기가 푹 죽어 쉬는 시간에도 제자리에 앉아있을 때는 좀 안됐다 싶기도 했다. 그러나 풀어주면 다시는 안그러겠다는 다짐도 아랑곳 없이 또 다시 날뛴다. 아마 이런 일을 1년동안 서너 번은 되풀이 했을 것이다. 정도는 착한 망아지이다. 장난을 너무해서 그렇지 하는 짓들은 나쁜 마음에서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큰 키에 비해서 동그랗고 작아보이는 얼굴은 언제나 졸린듯한 인상이다. 가는 실눈을 하고 웃을 때는 길고 얇다란 입술이 묘한 느낌을 준다. 전혀 악의가 없는. 공부를 좀 해야 할텐데...... .
황지훈 14번
지훈이는 참 불만이 많다. 내가 잘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친구들이 또 무엇을 어쨌는지 눈을 흘기고 혼자 불평이다. 그런데 체육시간이면 제 세상이다. 얼마나 신나하는지 모른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못하는 운동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던지기는 단연 학교에서 으뜸이요 그 때문에 학교 대표를 거쳐 마산시 대표 선수가 되기도 했다. 학급에서 피구시합을 한 적이 있었다. 던지는 공이 얼마나 세었던지 옆에서 심판하는 나도 섬뜩한 지경이었는데 쫓겨다니는 다른 친구들, 특히 여학생들의 가슴은 오죽인들 콩콩 뛰었겠는가. 그래서 물론 이겼지만 자기 편 아이들 아무도 이긴 것을 가슴으로부터 기뻐하지 않은 것을 지훈이는 알았는지 몰랐는지. 그 훤칠한 키에다 보통이 넘는 말쑥한 얼굴은 친구를 좀 더 이해하고 포근하게 감쌀줄 아는 너그러운 마음씨가 더 제격일텐데. 그래서, 정말 지훈이가 좋아서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일건데.
이경성 15번
학년 초에 전교부회장에 나서겠다고 해서 한동안 제 친구들과 떠들썩했었다. 결국 떨어지긴 했지만 그 일로 경성이란 사람이 그런 면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그마한 키에다 통통한 몸매의 경성이는 그냥 보기에는 부끄럼 많은 그런 친구였기 때문이다. 공부도 잘하고 사근사근해서 여자 친구들도 많은데 한동안은 우리 반 어느 여학생을 좋아하는 눈치로 제법 고민깨나 하는 것 같았다. 경성이는 또 소심한 구석이 있다. 남자 여자 가릴 건 못되지만 그래도 남자라면 좀 대범한 구석이 많아야 할건데. 겨울 방학 지나고는 앞 머리를 파마로 말아올려 멋을 부렸다. 그러니까 전보다 훨씬 예뻐지긴 했다. 안그래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일찍 장가들려나.
김상화 16번
조금 뚱뚱하긴 해도 몸이 균형잡힌데다가 얼굴은 적당히 검어 건강미가 넘친다. 언제나 싱글거리는 상화는 참 서글서글하다. 좀처럼 화를 낼줄 모르는 그 가슴은 대단히 넓고 깊게 느껴지고, 웃을 때 드러나는 하얗고 가지런한 이빨은 보는 사람을 산뜻하게 만든다. 그래도 공부는 자신이 없는지 숙제들고 내 앞에서 쩔쩔 맬 때는 더 골려주고 싶은 장난기도 생기게 한다. 상화가 나중 더 훗날 어른이 되어 콧수염을 달았을 때를 상상해 본다. 그 때의 상화는 아마 약주 한 잔 마시고 호탕하게 웃어제끼는 우리 이웃 아저씨와 비슷할 거라는걸.
김신우 17번
우리 모두는 신우를 부러워 했다. 그 또렷하고 분명한 말씨며 누구에게 지지 않을 그 박식함을, 그리고 자기의 앞섬을 결코 내세우지 않는 그 겸손함을 좋아했다. 그러나 우리가 신우를 정말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데 있을 것 같다. 그건 모든 것에 빈틈이 없는 듯한 그가 뜻밖에도 별 것 아닌 부끄러움을 가진다는 것이다. 수줍어 빨개진 신우의 얼굴은 우리의 마음을 참 편하게 해준다. 그건 신우의 마음이 따뜻하기 때문이리라. 우리 모두는 차디 찬 완벽함보다는 하는 짓이 엉성해도, 더운 피를 가진 그런 사람을 원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신우는 박사이다. 그리고 ‘신김치’이기도 하다.
이성림 18번
1학년 때 날씬했던 성림이가 무엇을 먹고 그렇게 살이쪘는지 참 궁금하다. 비교적 잘 생겼던 편인 그의 얼굴은 차 오른 살 때문에 두 눈이 한참 들어가버려서 예전의 그가 아니다. 몸집이 달라진 것 못지 않게 성격도 많이 변했다. 색시 같던 그가 지금은 유들유들하기가 기름 칠한 코끼리 엉덩짝이다. 학급회 시간에 책상 걸상 밀어내고 육중하게 일어서서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해댈 때는 모두가 배꼽을 잡았었다. 오른 살만 좀 어떻게 정리하면, 그리고 조금만 책하고 친해지면 성림이는 우리를 즐겁게 해 주는 것 못지 않게 자기 자신도 즐거워질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윤상백 19번
경성이 하고 늘상 붙어 다닌 상백이는 붙어 다녀 서로에게 옮았는지 둘이 많이 닮았다. 겉모습 만이 아니라 하는 짓거리도 그렇다. 꼭 아기 같은 인상을 받을 때가 더러 있었다. 실제로 상백이가 아기가 되었을 적이 한 번 있다. 1학기 언젠가 연극을 했을 때 아기 역을 맡은 상백이는 분장을 하고 나더니 완전히 아기가 되었다. 상백이는 재미있는 친구이다. 어디서 배운건지 이상한 노래도 곧잘 부른다. 여럿 앞에서 몸을 흔들어 대며 부르는 그 노래에 모두 흥이 났었다. 상백이는 나 보다 이웃 교실 3반 선생님께서 더 좋아 하셨다. 처녀 선생님이니까 그러려니 했더니, “귀엽잖아요. 꼭 애기같이.” 총각이 다 된 녀석이 귀엽기만 해서는 안되는데.
지양현 20번
양현이도 분명 우리 반이었지만 아마 헤어지고 나면 ‘그런 친구도 있었나?’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양현이는 교실에 있는지 없는지 표가 잘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가서 겨우 기억해 낸 사람은 ‘아, 그 책만 들고 앉았던 그 친구.’라고 할지 모른다. 양현이의 가장 친한 친구는 책이다. 언제나 책이다. 신우와도 잘 어울리지만 그래도 더 친한 것은 책일거다. 그래서 공부시간까지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몇 번이나 못하게 했지만 소 귀에 경읽기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중에는 못본체 할 수 밖에 없었다. 도저히 내 힘으로는 부치는 일이었던 것이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도 수업시간에 자기 책만 보는데도 어떻게 학교 공부는 잘 하는지. 아마 양현이는 집과 학교에서 하는 일을 바꿔하는 모양이다. 집에서는 학교 공부하고, 학교에서는 열심히 독서하고. 장소만 바뀌었다뿐이지 할 일은 하고 있는 셈이지만.
이균도 21번
언젠가 자그마한 키에 순해 뵈던 균도가 싸움을 했다고 해서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말도 없고 별다른 말썽도 없었던 그도 싸움을 다 하나 해서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주먹이 세다나. 비록 근영이에게 지기는 했지만 얻어 맞은 것만은 아니라니 균도도 힘깨나 쓰나보다. 그러나 소문이야 어쨌든 균도는 교실에서 얌전하게 지내는 몇 안되는 사람들 중의 하나라는 내 인상은 바뀌어지지 않는다. 언젠가는 그 성격이 바뀌어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놀랄지도 모를 일이긴 하지만. 지금의 내 생각은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지난 1년동안의 균도는 너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으니까.
김형태 22번
형태는 묘한 친구이다. 약하지는 않지만 야위어 보이는 몸은 참 날쌔다. 그래서 운동을 곧잘 한다. 그러나 공부시간에는 무슨 일을 하는지 통 그 속을 알 수 없었다. 내가 좀 과장해서 말하면 수업시간 40분 가운데서 39분 이상을 자기 일로 보내는 것 같았다. 그러니 자기인들 마음이 편할거며, 나 또한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있으랴. 몇 번이나 주의를 들어도 잘 안되는 모양이었다. 별거 아닌 그런 일일랑 쉬는 시간에 했으면 오죽 좋겠나. 장가갈 때 결혼식장에까지 장난감 들고 가서 만지작거리지 않을지. 끝나고 나서 색시한테 바가지 긁힐테지만.
김지웅 23번
지웅이는 참 곱게 생겼다. 좀 검은 듯 하지만 우선 매끈한 얼굴에 그 잘 생긴 입 하며 눈 맵시가 나중 처녀들 가슴 설레이게 할 것 같다. 또 난렵한 몸은 온갖 운동을 다하게 한다. 그기에다 이빨로 손톱을 깎아내는 기막힌 재주를 가지고 있으니 손톱깎이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다만 부끄럼을 몹시 타서 그렇지 목소리 또렷또렷하고 언제하는지는 모르지만 공부까지 썩 잘한다. 우리들이 헤어져 나중 만나게 되면 많이 변해있을 그런 느낌이 드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
최정용 24번
요즘 어린 사람들, 기준을 넘어서는 무게를 가진 이들이 많이 눈에 띄는 데 정용이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어떻게 좀 안될까 싶어 우리 반 대표적인 중량급들인 서영준, 이성림, 그리고 이 최정용 선수 세 사람에게 땀을 빼 보도록 했다. 그러면 체중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그 방법은 무엇으로 하든지 공부 마치고 자기 하고 싶은 운동을 하고 나서 땀이 많이 흐르면 나에게 와서 그 땀 보여주고 집에 가기로 했다. 물론 내가 일방적으로 정했던 것이지만 이 세 친구들도 그럴 필요를 느끼는지 그렇게 하기로 정했다. 기대한 건 아니지만 며칠도 못가 흐지부지 된 건 뻔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의 정용이만은 그렇지가 않았다. 당연히 성림이가 1번으로 그만두고 곧 영준이가 그 뒤를 따랐는데, 정용이는 계속 땀을 뻘뻘 흘리며 나에게 와서 이만하면 집에 가도 되느냐고 물었었다. 그 뒤 무슨 일로 내가 오후 시간에 자주 교실을 비우게 되어 자연히 그만 두어져버린 셈인데 아무튼 우리의 정용이는 이렇듯 착하고 진솔하다. 언젠가는 날씬한 개미허리가 된 정용이를 우리들은 만나게 될 것이다.
오상근 25번
5학년 처음 상근이를 보았을 때 그는 완전히 촌놈이었다. 그리고 키만 좀 더 커졌다뿐이지 1학년 때 그대로 숙맥이었다. 그런데 날이 날이 갈 수록 점점 시끄러워지더니 겨울방학이 지나고 나서는 숫제 고래고래 악을 써 댄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 사람은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러겠지 하겠지만 그런 것도 없는 것 같다. 제 나름대로는 그러는 무엇이 있겠으나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다. 물어보아도 우물쭈물 할 뿐이고 시끄럽다고 아이들도 나도 야단을 쳐 봤지만 소용이 없다. 공부시간까지 그러다가 몇 번이나 골마루로 쫓겨나고 매도 맞았다. 한 번은 쉬는 시간에 그가 하는 짓거리를 유심히 본 적이 있었다. 목에 핏대를 세우고 얼굴이 뻘개져서 노래라고 부르는 것이 귓청이 다 떨어져버릴 지경이었다. 그러다 참지 못하고 가까이에 있는 여학생이 뭐라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그 때 부터 시비가 붙을 것이다. 그 때까지 쭉 그랬으니까. 상근이는 외로운 모양이다. 그러나 상근이는 외로운 사람이 아니다. 나도 상근이의 좋은 점을 많이 알고 있고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모두 상근이의 친구이다.
나성진 26번
성진은 한 마디로 똑똑한 친구이다. 똑똑 소리가 날 것 같다. 안경을 끼고 좀 검은 듯한 얼굴에 두꺼운 입술은 우선 야무지게 생겼다. 성에 차지 않은 무슨 일이든 꼬치꼬치 따져야 직성이 풀리나 보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친구들과 많이 다툰다. 1년 동안 미화하고 짝지였었는데 무슨 일인지로 서로 다투어 오랫동안 말도 않고 지내는 눈치였다. 나중에는 좋아진걸 알았지만. 몇 사람이 어울려 일을 할 때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짓들이 몹시 못마땅하나 보다. 삿대질을 해대며 뭐라하다가는 아예 혼자서 해 치운다. 부지런하기도 하다. 성진이는 1학년 때 나와 같은 반이었고 5학년에서 다시 만난 친구이다. 1학년일 적에는 아주 쪼끄맸는데 지금은 상당히 많이 큰 편이다. 그러다가 다시 언젠가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되면 아마 나 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또 좀 예뻐지고.
김정은 27번
정은이는 달이다. 누가 볼까봐 온 세상이 다들 잠들어 고요해지면 동쪽산마루에 살포시 고개를 내미는 보름이 훨씬 지난 반달이다.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리칼에 그늘이 진 하얀 얼굴은 언제나 봐도 하늘의 외로운 달이다. 그러니 누구나 말을 붙이기 어렵게 한다. 무슨 생각에 그리도 깊이 잠기나.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은가. 그러나 그런건 없단다. 그래서 친구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나보다. 좀 시원시원해졌으면, 좀 더 덜렁대졌으면, 아니 차라리 왈가닥이 되었으면, 나는 정은이를 생각하면서 이런 바람을 가진다. 가슴을 열자. 그리고 이 눈부신 밝은 햇살을 받으며 함께 어깨를 곁고 달리자.
이수진 29번
눈이 작은 편인데다 복스런 얼굴은 웃음기가 배이면 사뭇 감겨진다. 어른들의 흔한 말로 부잣집 맏며느리의 푸근한 인상을 주는 수진이는 가끔 토닥토닥 다투기도 한다. 그런 것이야 흔한 일이라 괜찮다고도 할 수 있지만 제 힘에 부치면 바람같이 공중 전화통으로 직행한다. 집에 알려 엄마, 아빠한테 구조 요청을 위해서다. 그 바람에 나에게서 야단도 들었다. 친구하고 싸운 것을 집에까지 가져 가는 것은 옳지 못한 태도라고. 다른 친구 대부분 그렇지만 수진이는 참 부지런하기도 하다. 함께 일하는 친구들 많이 편했을 것이다. 수진이를 보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나중 시집가서 좋은 엄마가 될 거 같다.
이시내 30번
시내는 그 이름의 아름다움이 우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친구이다. 약간 검은 얼굴이 주는 강한 인상은 이름과 다름을 느끼게도 하지만 그게 오히려 보는 사람을 편하게 하기도 한다. 조금은 뚱해 있는 듯 하고, 하는 일에 자신없어 하는 모양이 여러 친구들과 썩 잘 어울리는 것 같지가 않다. 시내는 스스로를 외롭게 생각하는 듯 하다. 재미있는 점도 가지고 있는 그가 그러는 이유의 한 가지는 나도 알고 있다. 우리들 중의 몇몇이 그러하듯 주위로 부터 받는 학교 성적의 짐을 무겁게 느끼는 사람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란 아주 작을 뿐이다. 시내는 달라질 것이다. 그 마음에 드리운 구름들은 곧 말끔히 개어 시내의 가슴은 맑고 깨끗함만이 흐를 것이다.
장보나 31번
지난 해 3월 우리가 맨 처음 만나던 날, 나는 보나를 두고 한참을 혼란에 빠졌다. 분명 아는 얼굴인데 누구인지가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때 나의 머리에는 왜 로사의 이름이 떠 오르지 않았을까. 그리고 로사는 쌍둥이고 그 언니가 보나라는 것을. 며칠이 지난 뒤에 보나를 불러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겨우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보나는 6반의 로사와 쌍둥이이다. 로사는 1학년 때 나와 같은 반이었었다. 보나는 로사의 언니이기도 하고 우리 반 모두의 언니이기도 하였다. 남학생과 여학생 사이에는 누구가 좋다는 말들은 좀체로 하지 않는 법이다. 바보들 처럼. 그러나 우리들 사이에서 딱 한 사람 예외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보나이다. 보나를 누구나 좋아한다. 남학생들도 좋아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그걸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나는 그 까닭이 보나는 우리의 언니이자 누나라는 사실에 있다고 생각한다. 보나는 우리들의 친구이다. 그러나 친절하고, 의젓하고, 남을 존중하며 자기의 일을 해가는 보나는 우리에게는 친구 이상이다. 보나는 별로 예쁘지도 않다. 그저 우리들처럼 보통이다. 그러나 그 마음은 보통이 아니다. 누구보다 예쁘다.
이주은 32번
큰 키에 선이 굵은 얼굴을 가진 주은이는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는 듯이 보일 때가 있다. 친구들과 어울려 잘 지내지만 어떨 때는 친구들이 재잘거리는 그 바깥에서 턱을 괴고 앉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다. 마치 세상을 오래 살아 온 어른이 아이들을 보는듯이. 주은이의 생각은 일기장에 잘 나타나 있다. 가끔 보여주는 그의 일기장에는 그 어른스러움이 많이 배어 있었다. 일기글의 제목도 글과 참 잘 어울리게 쓴다. 한 번은 모두에게 그 제목들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다른 친구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 이후 다른 친구들의 일기 제목은 많이들 달라졌었다. 주은이는 지훈이와 대단히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학년 초에 소문으로 듣고 걱정했는데, 1년동안 그런대로 지내 온 것 같아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중간에 한 번 지훈이가 쏜 장난감 총탄이 눈에 맞아 병원에 다닌 일을 빼고는. 주은이는 어른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친구들이다.
정자영 33번
여학생으로서 남학생 못지 않게 많은 활극의 주인공이 되었던 사람이다. 큰 키에 좀 처럼 물러설줄 모르는 투지를 가졌는지라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같은 여자 친구들은 물론이지만 남자들과의 다툼에서 여간해서는 양보하는 법이 없는 것 같다. 여자이지만 보통이 넘는 체격에 상대방은 우선 기가 죽을 것이다. 그래서 자영이는 혼자가 될 때가 적지 않다. 나에게 와서 자영이가 어쨌느니 하고 고자질해대는 녀석들을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만큼 자영이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 된다. 이것은 자영이도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자영이는 우리들 중에서 비교적 몸과 마음이 커 있는 상태이다. 여럿이 토론을 할 때 자영이의 말은 누구 못지 않게 조리있고 자신감에 넘친다. 그건 자영이가 다른 친구들보다 더 성숙해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조금만 다른 사람을 감싸줄 수만 있다면 자영이는 누구로부터도 아낌을 받을 넉넉한 바탕이 되어 있는데.
윤성경 34번
갸름하고 하얀 얼굴의 성경이는 목소리까지 같은 느낌을 주는 듯하다. 황미애와 단짝이라 늘 붙어 다녔는데 그게 나의 마음에 좀 걸리기도 했다. 미애가 우리들 중에서 성경이의 마음에 가장 들어 하는 것은 그의 자유라 할지라도 미애가 우리들 중에서 가장 완전한 사람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 수 없다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사람은 내가 아닌 남으로부터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우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많은 사람과 사귀고 이야기를 하며, 그들의 사는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이 예사이다. 성경이는 나에게 대해서도 불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설혹 내가 성경이에게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그걸 이야기 할 수 있어야지. 이 답답한 사람아.
설정아 35번
‘정아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 말을 나는 모두들에게 한 적이 있다. 그건 물론 정아만 좋아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들 모를리 없겠지만 한동안 아이들은 퍽 궁금하게 생각했다. 학년 말이 되자 어떻게 알았는지 그 ‘정아’가 사실은 집에서의 내 짝지인 것이 드러나게 되었지만. 그러나 정아는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은 틀리지 않는다. 그는 부지런하다. 내가 무슨 일을 부탁하고 뒷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몇 안되는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작달막한 키에 머리를 달랑 뒤로 묶은 모습이 우리들 보통 사람 그런대로이다. 그래도 나는 정아를 좋아한다. 그건 우리 모두를 좋아하는 거나 같은 것이다.
권상미 36번
상미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상미를 보고 있으려면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상미는 말이 없다. 제 친구들과는 어떤지 모르지만 교실에서 말소리를 들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내가 가까이 불러서 무엇을 물어도 예, 아니오 이외의 소리는 좀체로 하지 않는다. 함께 둘러앉아 점심을 먹을 때도 상미는 그저 수저만 열심히 놀릴 뿐 나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몹시 거북한듯 했다. 그리고는 후딱 먹어치우고는 줄행랑이다. 상미는 학교 성적이 떨어지는 편이다. 그걸 몹시 생각하는 것 같다. 괜찮대도 그는 괜찮지 않은 모양이다. 사람이 어디 모두를 잘할 수 있는가. 큰 키에 눈이 작은 상미는 말이 없었다. 언젠가 친구들과 둘러 앉아 수다를 떠는, 달라진 상미를 보았다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
윤혜경 37번
혜경은 크지 않은 키에 하얀 피부를 가졌다. 그리고 손이 대단히 예쁘다. 아마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일은 아닐 수도 있을터이니까. 부지런하고 마음이 여린 그는 줄곧 남의 뒤에 서 있을 때가 많다. 다들 혜경이가 착하다고들 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착하다는 것이 꼭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우리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착한 어린이가 되라는 말을 자주 듣고, 또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것이다. 보통 생각하는 그 착함이란 어른들로부터 듣는 말이다. 우리 어린이끼리도 더러 쓰기는 하지만 주로 어른들이 쓰고 있다. 어른들의 말을 잘 들으면 ‘그래 너 참 착하다’라고 하지 우리 친구사이에 그런 말은 잘 쓰지 않는다. 우리는 정말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꼭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어린이가 되려고 해서는 안된다. 우리들 스스로가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착해지는 것이다. 혜경아, 정말 착해지자.
최인정 38번
인정이는 7반의 최재영과 쌍둥이다. 재영이는 남자이다. 그런데 인정이는 그게 - 자기가 남자와 쌍둥이라는 것이 - 싫은 모양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누구에서도 듣지 않았다. 다만 뜻밖에도 인정이가 쌍둥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너무 적길래 인정이가 그걸 숨기고 싶어하나 보다하고 짐작할 따름이다. 하지만 인정이가 자기와 쌍둥이인 재영과 나란히 손잡고 나보란 듯이 다니면 얼마나 멋질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인정은 빈틈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실수라는 것을 잘 하지 않는다. 생활하는 거의 모든 것이 남의 흉잡힐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오히려 인정이의 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정이에겐 친구가 많지 않다. 인정이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능력에 비하면 턱도 없이 적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럴까? 비교적 큰 키에 머리는 항상 뒤로 넘겨 묶었었다. 잘 웃지 않는 인정이는 남의 일에도 별 관심이 없는 듯 하였다. 언젠가 인정이의 얼굴에도 화사한 봄이 올것이다.
고미화 39번
내가 먼 훗날 미화를 기억해 낸다면 그건 아마 다리에 기브스를 한 사람을 보았을 때일 것이다. 미화는 다리에 기브스를 하고 이 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그리고 이제 5학년에 올라와서는 손가락에까지 그런 걸 했었다. 이 이야기는 상근이가 가장 잘 알 것이다. 미화는 학교생활을 말없이 지내는 사람중의 한 사람이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고집은 상당한 수준이다. 1학년 때도 그랬다. 그런 까닭으로 그 방면에서는 서로 닮은 성진이와 그처럼 오랫동안 토라져 있을 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좀 겁을 먹은 듯한 인상을 주는 미화는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더 많이 보냈다. 많은 시간이 지나면 미화도 남과 어울려 재잘거리는 그런 때가 오지 않을까.
오성혜 40번
성혜는 붙임성이 참 좋다. 누구하고든 곧잘 지낸다. 이야기도 사근사근 잘하고 수다도 잘 떤다. 그래서 끼리끼리 노는 어느 패거리할 것 없이 성혜는 스스럼 없이 끼인다. 그러나 이런 성혜에게 정말 친한 친구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친구는 많아도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적은 것이다. 그건 좀 이상하다. 왜 그럴까. 자그마한 키에 어울리는 몸무게에다 하얀 얼굴의 성혜는 파마로 멋을 부렸다. 그리고 무슨 일을 꾸미는지 늘 바쁘게 돌아다녔다. 오징어라는, 이름에서 비롯된 별명은 썩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1년 내내 그렇게 불렸다. 해가 가고 학년이 바뀌어 새로운 사람들 틈에 들어가서도 성혜는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 또 다시 새로운 일들을 꾸밀테니까.
허정남 41번
정남이는 대단히 빠르다. 우리 학교에 있는 학생들 중에서는 가장 빠르다. 별로 크지도 않은 몸의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리는 그는 다리가 안 보일 지경이다. 당연히 학교 대표로 많이 뛰었었다. 정남이의 얼굴 한 편에 그늘이 져 있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아마 적으리라. 나도 정남이의 집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물론 가 보지도 않았을 뿐더러 정남이에게 잘 물어 볼 수도 없었다. 그러나 나의 짐작으로는 틀림없이 정남이는 다른 친구들보다는 가정에서 누리는 행복이 덜할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나는 정남이가 참 안타깝다. 내 짐작으로만 그쳤으면 좋으련만.
황인영 42번
창원에서 통학을 했다. 작은 몸집에 비해 좀 큰 편인 얼굴은 동글납작하다. 똑똑하고 성격이 야무져서 못할 일 못할 말 별로 없는 친구이다. 동생과 함께 시내버스로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3학년에 있는 동생 숙임이도 우리의 교실에 자주 들락거렸다. 5학년 마치면 자기 동네 학교로 전학할 눈치였지만 왜 이리 오래 여기 학교로 다녔는지 모를 일이다. 그게 좀 불편한 일인가. 인영이의 생활은 자로 잰듯하다. 아니 자까지는 아닐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와 비슷하다. 빠진 구석이 없고 무엇이든 계산을 하는 것 같다. 나는 그게 좋지만 오히려 마땅치 않은 친구들도 있을지 모른다.
황 혜련 43번
우리의 반에는 ‘황’씨 성을 가진 사람이 넷 있었는데 지훈과 미애는 꺽다리처럼 마냥 컸고 인영과 혜련은 또 서로 비슷하게 작았다. 그래서 학년 초에 나는 어떨 땐 인영과 혜련을 서로 알아보지 못할 때도 있었다. 사실 둘은 서로 비슷한 점도 많았다. 공부하는 정도도 그렇고 동생이 교실에 자주 오는 것도 그랬다. 혜련은 글을 잘 썼다. 글쓰기로 두어 번 작은 상을 받기도 했다. 짤막짤막한 글들이 어찌 그리 예쁜지 혜련이 일기장을 보고 있으려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혜련이의 마음은 얼굴보다 예쁘다. 얼굴도 예쁘지만.
김민경 44번
무슨 말을 할라치면 웃음부터 시작한다. 입을 가리는 손놀림이 썩 자연스럽진 않지만 보기엔 좋다. 얼굴에 뭔가가 있었지만 겨울방학 들어 그걸 없앤다고 애쓴 모양이다. 안 그래도 괜찮을 것도 같았는데. 민경은 마음 씀씀이랑 하는 손 맵시가 여간이 아니다. 나중 아주 좋은 어머니가 될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 오죽하면 내가 며느리하자 했을까. 민경은 설정아랑 함께 붙어 다녔다. 그래서 6학년 때도 같은 반이 되게 해달라고 했지만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한유미 45번
키가 장대같아서 제일 뒤에 섰다. 철이 일찍 들어 그런지 몸맵시 다듬는데 여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남학생들에 대해서도 유별난 관심을 가진 눈치이다. 다른 사람들보다는 선영이랑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었다. 내가 보긴 별로 좋은 건 아니었지만. 유미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그렇게 떳떳한게 아닌 일이 많나보다. 자주 나를 흘끔거린다. 나는 그러는 유미가 싫다. 그것이 비록 내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짐작이 들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다면 내 눈치 볼 것 있나. 하고 싶은 건 해야지. 야단 들을 때는 듣더라도.
정선영 46번
우리 중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다. 입이 조금 큰 듯 하지만 안경을 쓴 모습이 예쁘다. 마음도 몸집과 같이 여려서 조그만 일에도 울상을 짓던 때가 더러 있었다. 덩치 큰 놈들이 선영이를 좀 아껴주었으면 좋으련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선영이가 이해를 해야지. 그리고, 뭐든 많이많이 먹고 몸 키워 주먹 키워 그 녀석들 혼내주자. 맡은 일들을 싫은 내색 않고 해 주는 선영이가 내게는 참 고마운 친구였다.
안유영 47번
1학기 언젠가의 국어 읽기 시간, 우리들은 참으로 뜻밖의 일을 겪었다. 한 사람씩 책을 읽어 가다가 유영이의 차례가 왔다. 그런데 글을 읽으려 들지를 않는 것이다. 원래 그런 친구들이 몇은 있게 마련이어서 기다리면 읽을 줄 알았는데 이건 완전히 예상을 벗어났다. 그 때 시계를 보아가며 재지는 않았었지만 우리들이 기다린 시간은 10분은 충분히 넘었었다. 10분! 말이 그렇지 온통 교실이 침묵으로 잠잠해진 그 10분은 참으로 길게 느껴졌다. 유영이 자기 자신은 그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까. 그러던 끝에 유영이의 헛기침 한 번에 정적이 깨어지고 드디어 낭독이 시작되었다. 아주아주 유창하고 낭랑한 목소리가 우리들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유영이를 생각할 적 마다 그 때의 그 일에 대한 의문을 아직도 풀 수가 없다.
이미혜 49번
우리들이 5학년이 되던 날 전학해 왔기에 우리들은 미혜가 전학생이라는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하고 지낼 법도 했다. 그러나 미혜가 우리들에게 하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해 버려서 그렇게 되어지지를 않았다. 우리들의 이상(정상적이 아닌) 신경과민증세인 ‘성적’에 대한 공포를 일깨워 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제딴에 공부 좀 잘한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비상이 걸렸고 난데 없이 나타난 이 ‘공부선수’를 이기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다가 결국은 거의 포기하고 말았었다. 공부 잘한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신우조차 몇 번씩이나 사색이 되곤 했다. 그러나 미혜는 모두의 경쟁 상대가 된 그런 사람만이 아니었다. 큰 체구에 걸맞게 의젓하고 마음이 넓었다. 그리고 자기가 다른 친구들보다 공부 잘하는 것에 대해서 미안해 하기도 하였다. 미혜는 어른이었다.
김영진 50번
우리들이 체육시간에 운동장에 있을 때 자기 어머니와 함께 우리 앞에 전학해왔다. 키가 자그마하고 얼굴은 동글동글하였다. 말이 적어 묻는 말에도 겨우 대답하는 정도였는데 처음에는 이제 전학해 와서 그런가 했지만 나중 알고 보니 내내 그랬다. 그런데 말만 적다 뿐이지 몸놀림은 달랐다. 동진이랑 짝이 되어 이 학교에서의 생활을 심심치 않게 보냈다. 영진이가 다른 사람들과 특별히 차이가 나는 것은 잘 웃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슨 말을 붙여볼라치면 말대답이 시원찮은 것은 물론이지만 그나마도 얼굴 표정이 거의 없다. 영진이와 나는 같은 아파트에 마주 보고 살기 때문에 우리 반 다른 누구보다도 자주 만나지만 우리 반 그 누구보다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서로를.
김수현 51번
새로 전학해 온 사람들은 모두 그 나름대로의 특별한 개성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수현이도 역시 그런 점이 두드러진다. 짙은 눈쎂에 부리부리한 눈, 굵직한 얼굴의 선이며 걸걸한 음성만 해도 벌써 특별한 여학생이구나 싶은데도 성격 또한 선머슴애처럼 데면데면한 구석이 많다. 보통 별 말없이 지내는 것도 같지만 남의 눈치를 살피거나 어려워하거나 하는 법이 없이 그저 모든게 시원스럽다. 말만 그렇지 같이 지냈던 오상근이가 이종사촌간이어서 상근이가 말썽거리가 되는 것도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수현이는 여자대장부 - 여장부이다.
김근영 52번
전학해 올 때 근영이 어머니로부터 근영이 소개를 받았었다. 말썽꾸러기라고. 내가 본 근영이의 첫 인상도 그래서 그런지 꼭 무슨 대단한 말썽을 일으킬 것 같은 예감을 주었었다. 키는 작달막하지만 딱 벌어진 어깨며 다부지게 생긴 얼굴이 그것을 뒷받침하였다. 그러나 근영이가 주먹이 세다는 것은 그 뒤 몇 번의 실전으로 증명이 되었지만 걱정했던바가 아니었다. 그런 것 쯤이야 언제든지 있을 수 있는 그런 작은 다툼이었으니까. 근영이는 자기 주먹만 믿고 친구들을 함부로 하는 그런 못난이가 아니었다. 근영이가 나는 퍽 대견스럽다. 아마 나중 커서는 약한 사람들을 도우는, 이야기에서만 듣던 ‘정의의 뭐뭐’가 될 것이다.
정현숙
지금까지 이 이야기를 써 온 ‘나’이다. 그리고 우리들 중에서 제일 대장 노릇을 한 선생님이다. 나는 우선 참 잘생겼다. 얼굴에 점이 좀 많아서 그렇지 못난데가 어디 있나. 그 ‘점’만 해도 그게 어디 흔한건가. 여늬 사람들에게는 드문 그런 것까지, 더구나 많이 있으니 보통이 아니잖는가. 머리가 대머리가 된다고 야단들인데 그래도 아직까지는 머리칼이 많이 남아있으니 그것 또한 큰 흠은 아니다. 다만 갖고 있는 실력이 변변찮아 다른 선생님들 처럼 공부 잘 가르치지 못한 그것이 무엇보다 부끄럽고 미안할 뿐이다. 나는 어느 날 깨달았다. 해마다 학년 초에 하는 다짐 - ‘올해는 꼭 잘 가르쳐야지, 그래서 후회하지 않아야지’ - 이것을 도저히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선생님 내년에 꼭 6학년 하세요. 그리고 꼭 저랑 같은 반 되세요.’ 이 얼마나 눈물이 솟도록 고마운 말인가. 그러나 나는 이제 그렇게 할 수가 없다. 1년이면 됐지 나 때문에 1년을 또 손해보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다른 선생님에게서 또 다른 삶의 방법을 배우게 해야 한다. 늦게도 이제야 나는 이 중요한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내가 6학년이 아니되었다면 그건 이래서인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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