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반초등학교 /경남 함양군 휴천면 금반리 (1972년 12월16일 - 1974년 3월 31일)
1972년 함양 금반초등학교 3학년 반
1972년 12월 16일 - 1973년 2월28일
12월 16일자로 중간 발령을 받아 담임한 학급이다. 교사로서 첫 발을 내딛은 학교이자 첫 담임한 학급이었지만 이 학급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심지어 맡은 학년이 3학년인지, 그리고 몇 반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다만 지금은 철거되어 없는 허름한 목조 건물에서 장작 난로에 불을 때던 일과 아이들이 많아 복닥거리던 생각이 날 뿐이다.
아마 부임하자말자 곧 이어 겨울방학이 시작이 되었을 것이고 또 개학 후 금방 학년이 바뀌어 이 아이들에 대한 기억이 희미한 것이라 생각한다.
1973년 함양 금반초등학교 4학년 2반
1973년 3월 1일 - 1974년 2월28일
사실상 첫 담임한 학급이다.
함양은 당시 내 고향인 남해도를 기준으로 할 때 아주 멀고 낯선 곳이었다.
집에서 나와 산길을 반 시간 이상 걸어 버스를 네 번 갈아타고 가야하는 곳이었다.
중간 기착지인 진주시에서 나는 종종 도화지를 한 뭉치씩 사들고 가곤 했는데 그건 학급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시골이라 돈을 들여 도화지를 사는 것도 그러려니와 그런 곳에서 구하는 도화지는 크기도 작은데다 두께가 턱없이 얇았다. 칠한 물감이 마르고 나면 시래기처럼 쭈글쭈글해져서 영 볼품이 없었다.
도화지는 학급 한 켠에 두고 아이들이 마음대로 쓰게 했다. 미술시간은 물론이고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사용해도 되었다. 아이들과 나는 공부를 마치고 틈만 나면 합판을 잘라 만든 화판을 들고 학교 옆 냇둑으로 나가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어쩌면 그림보다는 장난치며 노는 시간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금반초등학교를 떠나 이십 년도 더 지난 어느 날 나는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누군지 몰라 머뭇거리는 나에게 자기는 금반국민학교 4학년때 제자였던 박순철이란다.
박순철
그 갸름하고 콧물 질질 흘리던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 전화를 한 것이다. 서울의 어느 대학에 미술과 교수로 있단다. 한국화를 전공했고 국전에도 몇 번의 입상 경력도 있단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 물론 예전에도 그랬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회화의 기초`라든지 하는 전문적인 수준의 `미술 지도`를 할 계제가 못된다. 그러나 이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적어도 내가 한 노력이 그렇게 헛 수고는 아니라는 어느 정도의 믿음은 갖게 되었다.
하기야 그 때 내가 그런 전문적인 소양이 있었더라면 그 `아이`는 한국이 아니라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
그 `아이`는 지금 나이 오십을 바라보며 나와 같이 늙어가고 있을 것이다.
1974년 함양 금반초등학교 6학년 1반
1974년 3월 1일 - 1974년 3월 31일
교직 생활을 통틀어 가장 많은 72명의 아이들을 담임한 학급이다.
다행스럽게도(?) 딱 한 달동안 복닥거리다가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났었다. 그 아이들에게는 지금 생각하면 미안한 일이지만 그 당시 나는 어떻게 해서든 고향으로 가고 싶은 생각밖엔 없었다.
새 학기에 발령이 나지 않아 그러려니 하고 있었던 것이 4월 1일자로 가게 된 것이었다.









